[취재일기]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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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에선 도대체 누가 책임있는 당국자인가. " 새 정부가 미처 출범하기 전 너도 나도 정부 입장을 '대변' 하다 보니 외국의 협상 파트너들이 혀를 내두르며 했던 소리다.

새 정부의 구조조정에 가속도가 붙는 듯한 요즘 여기 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관료와 정치인들의 말을 듣자면 그때와 똑같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지난주 신문 지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부실기업주 재산압수 및 형사처벌' 발언만 해도 그렇다.

여권의 한 정치인과 기획예산위 당국자의 입을 통해 잇따라 흘러나온 이 말은 금융.기업 구조조정의 비용으로 국민에게 커다란 부담이 돌아가는 만큼 부실경영을 한 경영진에도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언뜻 당연한 소리 같기도 하지만 경영진의 범법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고 재산권 침해에 대한 위헌 시비도 벌어질 수 있어 그리 간단치 만은 않은 일이다.

그 충격을 고려할 때 정부 방침으로 확고히 정해지기 전까진 결코 쉽사리 할 수 있는 성격의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책임질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서 그런 말들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를 정부에서 사주겠다느니, 금리를 언제까지 몇 %로 내리겠다느니, 지방은행의 국제결제은행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이행목표치를 낮춰주겠다느니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정부정책에 대해 '실질적 책임자가 아닌' 관료며 정치인들이 '북치고 장구치는' 사례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작금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양 알리고 싶은 과시욕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 그들이 실제로 정책결정에 그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가.

서울에 주재하는 한 외신기자는 "언론보도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또 사실 여부를 어디에다 확인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고 씁쓸하게 말했다.

신예리 경제1부 기자〈shi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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