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명 무료진료 79세 김경희박사,사재로 간협회 설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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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건강과 재산이 아직 조금 남아 있어 다 쓰고 가려는 것뿐입니다." 지난 84년 당시 판자촌이 즐비하던 서울노원구상계동에 은명내과를 열고 생활보호대상자 등을 상대로 무료의료사업을 펼쳐온 '상계동 슈바이처' 김경희 (金庚熙.79) 박사. 팔순 (八旬) 을 앞둔 그가 사재를 털어 간 질환자를 위한 '사단법인 한국간 (肝) 협회' 를 설립, 생애 마지막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겠다고 나섰다.

지난 1월 서울도봉구창동에 사무실을 연 간협회는 지난달부터 회원모집을 시작으로 본격활동에 들어갔다.

1개월만에 3백50명의 회원을 확보했으며 연말까지 2천명으로 늘린다는 계획. 첫 사업으로 지난달 1천만원을 들여 간질환 역학통계조사를 연세대 의대에 의뢰했고, 간염.간암 등 간질환 환자들에게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월간 협회지 '간의 등불' 을 창간했다.

또 후배 의사들이 운영하는 병원과 연계해 회원들의 치료를 돕고 치료비도 지원할 계획. 모교인 연세대 의대와 간연구소 설립도 추진중이며 간질환 예방과 치료를 위한 강연회.전문학술회의도 개최할 예정이다.

협회 설립자금으로 1억원을 내놓은 金박사는 이를 위해 앞으로도 매년 1억원씩의 운영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전국적으로 4백만명에 가까운 간 질환자가 있지만 체계적 정보를 얻기 힘들고 일부는 치료비가 없어 생명을 잃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가 간질환 퇴치를 '마지막 봉사' 로 삼게 된 것은 간염과의 악연을 가진 가족사도 배경이 됐다."할아버지가 구한말 어의 (御醫) 였고 막내동생.아들.사위도 의사인데 간염 때문에 장모 등 4명의 혈육을 잃었습니다." 연희전문 재학시절부터 의료봉사를 해온 金박사는 70년대 청계천 빈민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하다 이들이 상계동과 중계동으로 집단이주하자 중계동에 진료소를 차려 13년동안 3만명을 무료진료했다.

이같은 활동이 알려져 86년 기독교병원협회 '누가상' , 91년 '서울시민대상' 을 받았다.

요즘도 은명내과를 찾는 하루평균 1백명의 환자중 40%는 무료진료환자. 매일 점심시간과 오후7시 병원문을 닫은 뒤에는 노원구내 생활보호대상자와 장애인 5~10명씩을 무료로 왕진하고 있다.

또 지난달 83명의 학생에게 40만원씩의 장학금을 주는 등 14년째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서울도봉구 창동초등학교 결식학생 14명의 1년치 급식비를 내주는 등 그의 이웃사랑에는 끝이 없다.

"조상으로부터 재산을 많이 물려받았습니다." 96년 연세대에 53억원 상당의 토지를 희사하기도 한 '상계동 슈바이처' 는 사회를 위해 돈을 많이 쓴다는 말에 겸연쩍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국간협회 02 - 907 - 2655~6.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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