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생계비 체험 열흘 "감기약도 못 사먹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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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생계비로 한달 나기’ 체험을 하고 있는 유민상.최정혜.김진희((左)로부터)씨가 서울 하월곡동 월세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김태성 기자

"월말엔 라면만 먹어야 할지도 몰라요."

참여연대의 '최저생계비로 한달 나기' 캠페인에 동참해 1일부터 서울 하월곡동 월세집에 살고 있는 유민상(24.대학원생)씨는 11일 "생활비가 이렇게 많이 들 줄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학생 체험 가족' 김진희(23).최정혜(21)씨와 함께 받은 3인 가족의 최저생계비 83만8000여원이 열흘 만에 절반이나 나갔기 때문이다.

유씨는 월세.쌀값 등에 목돈이 뭉텅뭉텅 빠져나가면서 정신이 퍼뜩 들었다고 한다. 월말이면 공과금.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반찬이라곤 콩나물.계란.김치뿐이지만 이마저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씨를 더욱 서럽게 한 것은 감기였다. 방이 습기 차 감기가 심해졌지만 진료비를 아끼기 위해 약국에서 약만 두번 사먹었다. 감기가 빨리 낫기 위해 생강과 천도 복숭아를 2000원어치씩 샀다.

그러나 인터넷 카페(cafe.naver.com/hopeup.cafe)에서 자신의 가계부를 본 네티즌은 "과일이라니… 웬 사치냐"며 꼬집었다. 머리를 정리하려고 3200원짜리 젤을 샀을 때도 네티즌은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낮에 자원봉사를 하느라 하월곡동을 거의 떠나지 않는 이들 세 사람은 다른 체험단에 비해 생활이 나은 편이다. 유일한 직장인 참가자 이대원(25)씨는 비상 상황이다. 1인 가족 최저생계비로 받은 36만8226원 중 11만4300원만 남은 것이다. 출퇴근하는 데 쓰는 교통비와 점심값이 큰 부담이다. 그는 앞으로 아침.저녁은 라면으로, 점심은 김밥으로 때울 예정이다.

이씨는 "최저생계비로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 맥주.치킨을 3만1000원어치 산 쓰라린 기억이 있다. 후배 네명이 방에 놀러와 한턱낸 것이 가계부 운용을 쪼들리게 하고 있다. 그는 "철없는 행동을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최저생계비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바람이네 가족 세명과 사는 양재연(31.여.대학원생) 씨는 "최저생계비에 가구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발달장애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바람이(2) 어머니는 큰딸 소망이(5)를 유치원에 맡긴 뒤 바람이를 데리고 복지관에서 특수교육을 받는 게 주요 일과다.

4인 가족 최저생계비로 양씨가 받은 돈은 105만여원, 남은 돈은 69만여원이다. 그러나 월세 15만원과 소망이 유치원비 18만원, 놀이방비 10만원 등을 20일 이후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막막하기만 하다. 그는 "생활비도 모자랄 판이니 장애아동에 대한 치료비.특수교육비 등은 엄두도 못 낸다"며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도 치료와 교육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미진 기자 <limmiji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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