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도네시아]4.은행벽엔 "수전노 화교…" 낙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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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마치 마을 전체가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

화교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불에 그을린 주춧돌 몇개와 시커먼 재로 남았다.

군데군데 여전히 가느다란 연기가 솟아오르는 곳도 눈에 띄었다.

걸레처럼 해진 셔츠와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때에 찌든 바지를 입은 40~50대 남자 3명이 맨손으로 폐허더미 속을 헤집고 있었다.

뭔가 값나갈 만한 물건을 찾는 것 같았다.

부수고 불태우고 약탈한 것도 모자라 그 잔해까지 유린하는 모습은 왠지 섬뜩했다.

19일 오전 9시 파마누칸지역내 시레봉마을. 수도 자카르타에서 승용차를 타고 꼬박 2시간30분동안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우리로 치면 읍 (邑) 정도에 해당하는 마을이다.

그러나 이 평온한 마을은 지난주말부터 계속돼온 소요 때문에 참혹한 몰골로 변해버렸다.

비단 시레봉뿐만이 아니다.

이웃 파마누칸을 비롯, 마양간.수카사리.보보스.봉가스.랑카사리.렝콩 등 주변 지역은 모조리 폭도들이 휩쓸고 간 뒤의 폐허만이 남아 있다.

마양간내 성당. 흉가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내리쬐는 아침 햇살과 어우러지면서 묘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마치 인간의 죄악을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EJA KATOLIK' 성당 정문위에 씌어진 글자다.

'가톨릭 교회' 라는 말일텐데 앞에 'GER' 이란 글자는 뜯겨지고 없었다.

나머지 글자도 여기저기 이지러지고 비뚤어진 모습이었다.

창문 유리란 유리는 모조리 깨져 있었다.

성당문앞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폐허더미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문을 잡아당겼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못질을 해놓은 듯했다.

깨진 창문을 통해 들여다본 성당 내부는 더 비참했다.

신도들이 미사를 드리던 의자들은 한쪽으로 밀려난 채 검게 그을려 있었고 벽에는 'MILIK ISLAM (이슬람 소유)' 라는 낙서가 씌어 있었다.

십자가가 모셔져 있어할 할 단상은 각종 기물 쓰레기로 가득했다.

값나갈 만한 것들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한마디로 초토화된 모습이었다.

수소문 끝에 필랑에 있는 화교들의 비밀 은신처를 어렵게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외부인을 보자 모두들 외면했다.

겁에 질린 모습이 완연했다.

한 60대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온 기자" 라고 신분을 밝히자 "아무 말도 묻지말라" 며 손을 내저었다.

동행한 현지 안내인이 "아무 걱정말라" 고 말했으나 "무섭다" 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한참을 달랜 끝에 겨우 "약방이 다 불타버렸다.

우리들은 모두 도망쳤다" 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딱한 모습이었다.

파마누칸에 있는 유일한 은행인 페르크레디탄 라키야트 은행은 비교적 말끔한 모습이었다.

은행으로 들어가 소요 당시 상황을 묻자 뚱뚱한 몸집의 은행원 수두리얀트 (38) 는 "은행은 군인들이 특별경계를 섰기 때문에 무사했다" 고 설명했다.

이 은행에는 평소 3억루피아 (약 3만달러) 정도의 '거금' 이 있기 때문에 경찰들이 특별히 신경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입구옆 벽에는 'CINA GOBLOK MATA DUITAN' (멍청한 화교놈들은 모두 수전노들!

) 이란 구호가 적혀 있었다.

화교들에 대한 인도네시아인들의 반감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은행앞에 쭈그리고 있던 왜소한 체구의 40대 남자에게 "소요때 다친 사람이 많은가" 라고 묻자 "많이 죽었다" 고 답했다.

누가 죽였느냐고 묻자 "군인이다.

총소리를 들었다" 고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공식발표하는 것보다 수십배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소문이 미상불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마누칸내 경찰서를 찾아 소요 상황을 묻자 디디도라고 이름을 밝힌 한 경찰관은 "어제까지도 인근 수카사리 등지에서 4백명 정도가 참가한 소규모 소요가 있었다" 고 소개하고 "이중 1백50명을 연행해 조사중" 이라고 밝혔다.

운동복 차림의 다른 경찰관은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파마누칸 지방을 중심으로 50~1백명 정도의 시위꾼이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 고 전하고 "이들은 주로 대낮에 이 마을, 저 마을로 이동하면서 시위를 선동한 뒤 밤에 다시 나타나 시위를 주도하고 시위가 불붙기 시작하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의 농민시위가 점차 조직화하고 있다는 최초의 증거가 확인된 셈이다.

[시레봉 (인도네시아)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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