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도의 부드러움에 취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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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28면

젊은 층을 겨냥한 순한 술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도수 떨어지는 소주 시장

㈜진로는 지난달 해양심층수 함유 소주 ‘진로 제이’의 알코올 도수를 19.5도에서 18.5도로 낮춰 출시했다. 출고 가격은 360mL 병당 820원.

알코올 도수 1도를 낮추면 맛은 어떨까. 기본적인 소주 맛을 유지하면서 쓴맛과 단맛을 줄여 더욱 깔끔해졌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진로 제이’ 브랜드 매니저인 송민철 차장은 “소주 도수가 내려갈수록 소주다운 맛을 내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도수가 내려갔다고 톡 쏘는 소주의 맛까지 잃지는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물과 주정 이외에 6~7가지 부원료를 적절하게 섞어야 하는데, 그 배합 비율이 중요한 노하우라고 한다. 저도주 개발은 단지 주정에 물을 더 많이 타는 것 이상의 고난도 작업이라는 얘기다.

브랜드 이름을 짓는 데도 신경 썼다. 기존 제품은 진로의 영문 머리글자인 ‘J’를 강조하는 데 그쳤지만, 리뉴얼한 제품은 한글로 커다랗게 ‘진로 제이’라고 표현했다. 소주가 한국적인 제품임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기존 ‘J’를 출시했을 때 일본 제품이나 지방 소주로 오해하는 소비자까지 있었다고 한다. 진로는 세련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배우 신민아를 ‘진로 제이’의 모델로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진로가 1924년 소주를 처음 출시했을 때, 당시 증류식 소주의 도수는 35도였다. 65년 증류식에서 희석식 소주로 바뀌면서 도수를 30도로 낮춘 데 이어 70년대 25도 시대를 열었다. 이어 90년대 후반 23도로, 2000년대 들어 21도로 낮췄다. 최근 몇 년 새에는 소주 도수의 마지노 선으로 여겨지던 20도 벽까지 허물었다. 현재 국내 소주 시장의 주력 제품 도수는 20도 안팎이다. 진로의 라이벌인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은 19.5도다. 시판 소주 가운데 도수가 가장 낮은 제품은 경남 지역 소주 회사 무학이 2006년 출시한 16.9도짜리 ‘좋은데이’다. 소주 도수의 상·하한 규정은 따로 없다. 다만 도수가 17도 미만이면 밤 10시 이후 방송 광고를 할 수 있다.

소주가 점점 부드러워진 데는 주목할 만한 사회적 흐름과 맥락이 있다. 소득이 높아져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서 웰빙 트렌드가 강해졌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독한 소주를 찾는 이가 줄어든 반면, 그저 부담없이 적당히 취하고 즐기기 위해 소주를 찾는 이가 늘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많아지면서 ‘부드러운 소주’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늘었다.

소주 도수가 내려가는 데 대해 애주가의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소주가 ‘밍밍해져’ 취하려면 더 많이 마셔야 한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송민철 차장은 “모든 소주 제품의 도수를 내린 게 아니라 고객의 선호를 고려해 제품군을 나눈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당(酒黨)들은 기존 주력 제품인 ‘참이슬 오리지널’(20.1도)이나 ‘참이슬 후레쉬’(19.5도)를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두 제품은 여전히 진로소주의 흔들리지 않는 맏형이다. 출고 기준으로 보면 ‘오리지널’(50%)과 ‘후레쉬’(47%)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술을 조금만 마시려는 이를 위한 소용량 포장도 환영받고 있다.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은 판촉용으로 만든 ‘리틀 처음처럼’이 인기를 끌자 아예 시판하기 시작했다. 일반 소주의 3분의 1 크기인 120mL 병에 담았다. 소주잔으로 두 잔 남짓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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