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청 발표 전 자체 진상조사 제품 수거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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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석면 탈크 공급 업체를 추가로 발표하자 이 원료를 쓴 제약·화장품업계는 진상조사와 함께 발 빠르게 제품 수거에 나섰다. 보령메디앙스와 한국 콜마의 베이비파우더 등에서 석면이 검출된 데 이어 석면에 오염된 탈크를 공급한 원료업체 7개 사가 6일 추가로 발표되자 제약업계는 사태 수습에 안간힘이다.

한국제약협회는 덕산약품공업이 공급한 탈크를 원료로 쓴 화장품과 제약회사가 100여 곳에 이를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제약협회는 이날 “식약청의 발표가 있기 전에 이미 각 업체가 석면 함유 여부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여 인체에 해를 입힐 우려가 크다고 판단되는 의약품에 대해서는 자진 수거해 폐기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날 긴급대책회의에 따른 결론이다.

제약협회의 김선호 실장은 “식약청에서 결정된 ‘새로운 탈크 원료 기준 설정 및 조치 이행 명령’에 따라 석면 미검출 검사 등을 반드시 실시해 적합한 탈크만 사용하도록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제약업체는 탈크를 경구용 알약에 1% 정도로 투입한다. 알약끼리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미량으로 뿌려 주는 환택제로 쓰인다. 호서대 유일재(독성학 전공) 교수는 “석면에 오염된 탈크가 위에 들어가더라도 워낙 미량이라 위액에 대부분 녹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서 “고농도로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크게 문제될 게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비파우더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보령메디앙스 관계자는 “총 16억원에 달하는 해당 제품을 모두 수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덕산약품공업으로부터 공급받은 탈크를 쓴 기업들은 일제히 석면이 검출됐다”며 “석면 관련 기준이 없다 보니 원료 수입업체들이 검사를 제대로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보령 측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곧 수거 현황에 대한 공고문을 게시할 계획이다.

화장품업계도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을 잇따라 마련했다. 덕산약품공업의 원료를 쓴 화장품 회사인 로쎄앙이 5개 품목에 해당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1976년 설립된 로쎄앙은 색조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업체로 2007년 매출액이 10억원 정도인 회사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이 업체 관계자는 이날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비웠다”고만 말했다.

대한화장품협회는 식약청 발표와 별도로 소속 회원사를 상대로 탈크 사용 현황을 조사해 석면이 포함된 원료를 쓴 회사의 명단을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심재우·김성탁 기자

◆석면=섬유 모양을 한 광물로 열에 강하고 마모가 잘 안 되는 등의 특성이 있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그동안 슬레이트를 비롯한 건축자재와 브레이크 라이닝의 재료 등으로 사용돼 왔다. 석면은 크게 여섯 가지 종류가 있다. 청석면과 갈석면은 독이 강해 1996년 이후 사용이 금지됐다. 트레몰라이트·액티노라이트·안소필라이트는 상품성이 적어 거의 쓰이지 않았는데 2003년에 사용이 금지됐다.

◆탈크=베이비파우더와 화장품·의약품 등에서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검출된 것은 이들 제품에 ‘탈크(talc)’라는 원료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탈크는 우리말로 활석이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시간에 표면이 가장 무른 암석이라고 배운 광물질이 바로 활석이다. 탈크의 주요 성분은 마그네슘으로 불에 잘 타지 않고 열과 전기가 잘 전달되지 않으며 분말끼리 잘 달라붙지 않게 하는 성질이 있다. 문제는 탈크가 자연 상태에서 석면을 함유한 사문암과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따라서 탈크를 가공할 때 석면을 제거하는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들은 그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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