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북한 미사일에 가슴 졸이는 재일동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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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60만 재일동포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벌어질 ‘후폭풍’에 가슴 졸이고 있다. 재일동포들은 과거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 벌어졌던 상황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998년 8월 북한은 대포동 1호를 발사했다.

탄두는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에 떨어졌다. 그러자 일본에선 우익들의 조총련계 동포 위협과 폭행이 줄을 이었다. 도쿄에선 중년 남자가 자전거 통학을 하던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학생에게 우산을 휘두르고 침을 뱉기도 했다. 도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의 조총련계 학교는 “급수시설에 청산가리를 넣었다”는 협박 전화도 받았다.

이번에도 북한이 로켓을 발사할 경우 우선은 조총련계 동포들이 직접적인 불똥을 맞겠지만, 한국 국적의 동포들도 간접적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2002년 북한이 과거에 일본인들을 납치했고, 그들 중 상당수가 죽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을 때 일본에선 1년 넘게 ‘북한 때리기’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우익 세력들은 길거리에 나서 북한과 조총련 때리기에 앞장섰고, TV 등 언론이나 우파 정치인들은 연일 북한을 비난했다. 한국계 동포들은 직접 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항상 마음 졸이면서 살아야 했다.

이를 기억하고 있는 재일한국민단은 급기야 지난달 2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책동을 규탄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민단 중앙본부의 정진 단장은 “로켓의 일부가 일본 영토에 낙하하면 우리 동포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재일동포의 생활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발사 계획을 즉시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현재 일본에는 민단계 약 50만 명, 조총련계 9만여 명이 살고 있다. 이제 1~2세들은 노쇠하고, 3~4세로 이어지면서 일본 귀화자가 늘고, 일본 의존도는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는 일본 사회의 민족주의 의식을 강화시켜 아직도 사회 일각에 남아 있는 한국인에 대한 차별 의식을 부추길 수도 있다. 그럴수록 한국인들은 어려워진다. 또 우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평화주의자의 입지는 위축돼 일본이 군사대국화로 가는 길이 넓어질 가능성도 크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재일동포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김동호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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