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보는 세상] 아이들의 거짓말엔 특별한 것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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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거짓말쟁이
김리리 글, 한지예 그림, 다림, 48쪽, 7000원

정말이에요,정말!
케스 그레이 글, 닉 샤라트 그림, 이명연 옮김, 32쪽, 8000원

거짓말쟁이 수잔
마우리시오 바크 글, 카르메 뻬리스 그림, 푸른나무, 26쪽, 5200원

“엄마가 엄마 딸 안 한다고 했지!”

엄마에게 혼나던 어린 여자 아이는 다시는 거짓말 안하고 엄마 딸 할거라며 용서를 빌고, 엄마가 그 딸을 안아주며 끝나는 우유광고가 있다. 닭똥 같은 눈물 방울을 뚝뚝 흘리며 우는, 한없이 예쁜 아이의 얼굴이 따스함을 주는 그 TV 광고를 볼 때면 도대체 저 아이가 어떤 거짓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린이 책 편집자가 된 이후 줄곧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느껴 보려고 노력하지만 정말 힘든 것은 바로 ‘어린아이처럼 거짓말하기’다. 아이들의 거짓말에는 정말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성장기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아이들의 거짓말엔 별다른 목적이 없다. 그것이 특별함의 비밀이다. 그저 어른을 흉내 내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또는 단순히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엉뚱한 상상력이 동원되는 것이다. 그 거짓말은 어른이 흉내내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어른들의 거짓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가 있다.

『거짓말쟁이 수잔』에서 주인공 수잔은 언제부턴가 자기 침대에 푸른 양들이 있다며 자고 있던 엄마 아빠를 깨우기 시작한다. 그것도 모자라 토마토를 무서워하는 사자, 말하는 꽃을 보았노라고 밤마다 거짓말을 해대는 통에 엄마 아빠의 걱정은 늘어만 간다. 그런 딸아이를 보다 못한 아빠는 어느날 거짓말을 하다가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 이야기를 해주며 수잔에게 겁을 준다.

그러나 수잔의 상상력은 아빠의 겁주기에 결코 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방에 있는 피노키오가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서 10m나 코가 길어졌다며 코를 잘라 주어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거짓말을 고쳐 주려다 계속되는 거짓말에 말려든 아빠는 결국 피노키오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서로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자신의 거짓말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쪽은 아이가 아니라 아버지인 것이다.

특별한 목적이 없는 수잔의 거짓말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정말이에요, 정말!』에서 주인공인 데이지는 거짓말로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시도한다.

데이지는 자신을 돌봐주러 온 앤젤라 언니에게 자신은 우유 대신 레몬주스만 먹었고, 아무리 놀아도 자신은 더러워지지 않으니 목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둥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오히려 자기 말을 못 믿겠냐는 듯이 “정말이에요, 정말!”하고 야무지게 말한다. “몇 시에 잠자니?”라는 물음에 “12시 넘어서 자요. 12시까지 비디오를 봐요”라고 거짓말을 하고도 “정말이에요,정말!”을 외친다.

그런 데이지는 내 조카를 꼭 닮았다. 밥 먹으라는 말에 자기는 집에서 밥 대신 가끔 아이스크림을 먹고, 얌전히 만화 비디오를 보라는 말에 자기는 밥 먹은 후엔 늘 놀이터에 가서 그네를 탄다고 하던 그 조카 역시 어김없이 “이모, 정말이야, 정말!”하고 능청스럽게 얘기했다.

어린이들의 거짓말 솜씨는 다 어른들에게 배운 거라는 걸 알려주는 책도 있다.

『엄마는 거짓말쟁이』에서 슬비의 엄마는 그야말로 밥먹듯이 거짓말을 하는 어른이다. 가기 싫은 반상회는 슬비가 말을 전해 주지 않아 몰랐다며 능청을 떨기도 하고, 운전할 때는 슬쩍 신호 위반을 하기도 한다. 경찰의 단속에 걸리자 옆자리에 앉은 슬비를 가리키며 “우리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요”라며 있지도 않은 병을 만들어 낸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더니, 결국 ‘거짓말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걸 몸소 보여 주는 엄마의 가르침 덕에 슬비도 어느새 술술 거짓말을 할 줄 알게 된다.

아이들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면 따끔하게 버릇을 고쳐주어야 하는 것이 어른들의 임무이긴 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 번씩 스쳐가는, 상상력이 개발되는 과정이라고 너그럽게 봐줘야하는 부분도 있다. 그 거짓말엔 상상력과 더불어 거짓말이 불가피하다고 스스로 판단되는 복잡한 동기들이 얽혀 있다. 게다가 뱃속에서 배운 것이 아닌 한 그 거짓말은 모두 어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배운 것 아닌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굳게 믿는 어른들은 세 살배기 아이들의 깜찍한 거짓말을 호되게 야단친다. 하지만 나는 입에 초콜릿을 잔뜩 묻히고서 “나는 안 먹었고, 이모가 다 먹었다”고 시치미를 떼는 조카가 예쁘기만 하다. 그리고 앞 뒤 계산없이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 마음을 여든까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만들고 싶다.

김지연(작가정신 어린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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