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조각도 건축도 문학도, 2500년 전 그때가 좋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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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과 힘』을 쓴 이디스 해밀턴은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순수 지성의 완벽한 표현으로 보았다. 사진은 그리스 올림피아 박물관. [중앙포토]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과 힘

이디스 해밀턴 지음, 이지은 옮김
까치, 359쪽, 1만4000원

“어느 조각품도 그리스 조각에 견줄만한 것이 없고, 어느 건축물도 그리스 것보다 아름답지 못하며, 어느 문학작품도 그리스 것보다 우수한 것이 없다.…역사학은 투키디데스보다 더 위대한 학자를 찾아내야하며, 성서를 제외하고는 플라톤의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시 산문은 없다.”(15쪽)

이 책은 고대 그리스에 바쳐진 뜨거운 찬양이다. 그리스 문명의 후손인 서구의 근대문명도 함께 찬양된다. 기원전 500년 그리스인들이 남긴 ‘이성의 빛과 아름다움의 은총’ 때문에 서구 문명이 유지되고 있다는 소신 때문이다. 그때는 좋았다. 개인과 공동체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어려움 없이 분쟁이 해결됐다. 공동체가 먼저였으니까. 그렇다고 책은 고대 그리스에 대한 막연한 찬양이 아니다. 플라톤·헤로도토스·투키디데스에서 크세노폰·핀다로스·소포클레스 등 당시 핵심 인물들이 남긴 작품을 꼼꼼히 읽고 예술적 성취와 정신적 가치를 추적했다. 결론은 그리스인들이야말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법과 자유, 진리와 종교,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완벽한 조화를 이끌어낸 문화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건 ‘종교에 잠겨있던’ 고대 이집트의 문화와 달랐던 성취다. 이성의 왕국이라 할 만하다. 유감이지만 이성의 전통은 중세 시절 잊혀졌다가 르네상스 때 재발견됐다. 하지만 당시의 정신까지 온전히 파악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결론은 이렇다. “그들처럼 정신과 이성 사이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은 아직도 우리의 과제다.”

이 책은 훗날 한 미국의 지도자에게 영향을 줬다. 곳곳에 밑줄을 치며 읽었으며, 들고 다니면서 큰소리로 읽곤 했다. 존 F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다. 책 선물을 한 사람은 형수인 재클린. 로버트는 당시 형의 죽음으로 상심이 컸지만, 죽음을 직시하는 그리스인들의 용기에서 교훈을 얻었다. 공공의 가치에 대한 강조도 감명 깊었을까?

그게 1964년의 일. 당시 이 책은 명성 높았다. 30년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을 쓴 공로로 저자는 예일대 등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학술원 회원이 됐다. 본디 이디시 해밀턴은 볼티모어의 시골학교 교장 출신. 은퇴 뒤에 썼던 이 책이 ‘대박’이었고, 그리스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멋진 주문처럼 들리는 이 책은 유심히 훑어보면 조금은 낡았다. 그게 좀 아쉽다. 이렇게 대놓고 고대 그리스 찬양에 열중하는 역사책은 요즘 없다. 고대 그리스 역사야말로 서양사의 완벽했던 유년기였다는 시각 자체가 ‘진보하는 서양사’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한때 한 시절의 설정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읽히는 것도 사실이다. 꽤나 화려하면서도 웅변조의 문장에서는 19세기 분위기까지 묻어난다. 깔끔하고 쿨한 척 하기에 바쁜 요즘의 글쓰기 방식과 달리, 조금은 느끼하면서도 어떤 열정의 호흡이 느껴져 신선하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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