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빠진 사내 오진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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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좌절이란 무얼까. 그리고 희망이란-.

해답은 멀다. 자꾸 휘말린다. 카피라이터 최병광은 ‘사랑에 빠지길’ 권하지만(근작 ‘공짜 성공은 없다’중에서)그것마저도 좌절/희망의 첨예한 경계선에선 무기력하다. 혹시 둘은 양면으로 나뉜 삶의 데칼코마니(轉寫)같은 것이 아닐까. ‘훌쩍 떠나기’‘잠적하기’는 간혹 그 갈등을 인위적으로 지우는 수단으로 유용하다.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연락을 끊은 사람 오진택(34)씨. 지난해 언젠가 택시 안에 흘러나오는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를 만났다. 아니 정확히는 음성을 통해 그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편이 옳다. 막바지 소식 이러쿵 저러쿵-. 그리고 끝맺는 멘트 한마디. “베트남 호치민의 오진택입니다” 소식은 차치하고 리포터의 행적과 근황을 알게 하는 방송이라니. 더 솔깃했다.

그는 지난 90년말 ‘청소년 자율잡지’를 만들다가 쓴잔을 마셨다. 지금도 그렇거늘 감히 그때 ‘자율’이 먹혔을 리 만무했다. 절망을 씻기 위해 길을 떠났다. 중국·스리랑카·인도·캄보디아를 거쳐 94년 초여름 발길을 멈춘 곳이 베트남. 그해 가을 서울로 돌아와 프리랜서 글쓰기에 매달렸지만 무언가가 자꾸 발목을 잡는 듯했다. 베트남을 향한 이상한 끌림. 떠날 이유도 없었지만 서울에 머물고 있을 이유도 없어 재탈출을 감행했다. 그것도 주변사람들 몰래.

막연히 떠다녔다. 경제·문화협력과 라이따이한(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 태어난 2세)을 지원하는 교육지원사업의 허상이 보였다. 또 간혹 갈팡지팡하는 현지 한인회(韓人會). 왜 우리는 이런 오지에 나와서도 생색과 명분을 위한 편가르기에 빠져드는 것일까. 여전히 그가 할일은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상물 제작과 소설쓰기를 꿈꾸었던 것은 그나마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에 불과했을 것이다. “다 참을 만했지만 내가 오래 전에 제안했던 사안이 역으로 한국의 방송사·프로덕션의 기획물로 둔갑해 취재협조 요청을 받을 때…타이틀 없는 자유인의 서글픔이 몰려 오더군요.”

CBS 리포터 생활마저도 현지 당국의 견제로 오래 지탱하기 어려웠다.

지난해말부터는 한국외국어대 산하 아시아문화재단이 첫 사업으로 펼친 주(駐)호치민 한국문화원 개원작업에 동참했다. 지난 4월 옛 교민회관을 개보수해 활동공간을 마련했다. 그런데 언제 베트남 정부의 허가가 떨어지는 것일까. 지루한 기다림-. 다시 절반의 절망.

"많이들 문화교류를 말하지만 교류가 아니라 일방통행이다. 한판을 벌이고 떠나는 식. 돈만 날아가고 후유증은 남는다. 차라리 해프닝을 교류종목에 포함시키면 완벽하련만. "

그나마 우리 정부가 펴는 대 (對) 베트남 문화교류 활동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다.

공무원들 하는 일이란 항상 도마 위에 오르기 마련인데도, '오히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소규모 한국영화축제, '아들과 딸' '춤추는 가얏고' 등 TV 드라마를 베트남어 더빙물로 현지 TV채널을 통해 소개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그는 얼마전 다시 서울에 왔다.

돌아올 이유도 없었지만 하염없이 주저앉아 있을 이유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두면 새로 읽히는 게 있을까 하는 바람. 오는 12월의 한.베트남 재수교 5주년 기념행사가 꾸며지면 좋겠다는 바람.

"사실은 두나라의 재회 자체가 드라마다.

그러니 5주년…아무도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인도차이나에서 인기 높은 가수 김건모와 국립국악예술단의 현지 공연을 추진해볼 작정이다. "

그의 진짜 꿈은 우리의 창작물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현지 무대예술가로 하여금 연극.뮤지컬 작품화하는 것. 이도저도 안되면 디지털 무비 카메라를 메고 지구촌 전쟁지역으로 돌격 앞으로 - .

그리고 소설 한편의 꿈을 향하여.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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