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영어교과서 페미니즘내용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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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당신을 체크해보세요.(A:그렇다 B:아니다 C:모르겠다) 1.내 남자친구 키가 나보다 크지 않아도 상관없다.A=2/B=1/C=2 2.사람은 나이들수록 현명해진다.A=3/B=0/C=1 3.애가 있는 주부는 직업을 가지면 안된다.A=3/B=0/C=2 4.가난한 사람과는 절대 결혼 못한다.A=2/B=0/C=1 5.배우자 선택시 부모의견을 매우 존중한다.A=3/B=0/C=2 6.못생기고 지저분한 사람 옆에 앉아도 상관없다.A=0/B=2/C=1 7.미인은 대개 멍청하다.A=4/B=0/C=2 8.여성으로서 직장을 갖는데엔 능력보다 외모가 중요하다.A=2/B=0/C=1 9.“여자 행복은 남편에 달렸다”는 속담은 그런대로 맞다.A=4/B=0/C=3 10.남편을 고를 땐 심성보다 능력이 우선이다.A=0/B=3/C=2 ▶20점 이상-당신은 구닥다리/▶8~19점-사회 통념과 자기의 신념사이에서 갈등중/▶8점 이하-자유의지가 풍부한 사람입니다.

갑자기 웬 여성잡지기사? 천만의 말씀,숙명여대 1학년 영어교과서의 일부다.기왕 영어 배우는거 여성권리찾기 운동도 덩달아 하자고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시도했다.이런 내용도 있다.사람을 통칭하는데 왜'man'이나'he'를 써.당연히'person'이지.죽음에서 깨어난 백설공주도 사뭇 생각이 다르다.“왕자가 다 무슨 소용이람.난 유학갈래.” 뼈빠지게 걸레질하는 며느리 옆에서“나 젊었을 땐 더했다”며 소파에 누워 빈들거리는 시어머니도 등장하고“저 여대생은 분명히 첫눈에 내게 반했을 것”이라며 음흉한 시선을 건네는 외국인(백인)도 나온다.

학생들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설문조사를 해봤더니 80%이상이 좋단다.재미있으니까.또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교과서하고 완전히 딴판이니까.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읽는 학생들도 많다.

교과서에 페미니즘을 불어넣는데'혁혁한'공을 세운 염경숙 숙대아세아여성문제연구소 연구원.“history(역사)를 herstory로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아녜요.그냥 평등하게 하자는 건데 우리사회가 워낙 남성중심이라 페미니즘으로 비치는 거지요.”지난 학기까진 영국 것을 썼는데 맨 남의 나라 얘기니 수업분위기가 썰렁했다.그래서 아예 숙대생 관심사 위주로 책을 만들었고,이 과정에 참여한'자타공인 페미니스트'염연구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 책이름도 통통 튀는'다이빙대 영어(Springboard English)'다. 영어의 바닷속으로,페미니즘의 수영장으로 풍덩 뛰어들라는 얘기다.

하여간 색다른 수업을 하다보니 교수.학생 서로가 상대방에게 약간씩은 실망이다.“수업시간중 여권(女權)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진 않아요.학생들에게 아직 페미니즘 인식이 부족한 탓이겠죠.”(임성균 교수)“교과서 내용은 진보적인데 막상 가르치는 선생님이 무의식중에 반(反)페미니스트적인 발언을 종종 해요.가령 숙대인의 이미지는 현모양처라는 식의….”(한국사학과 1년 고지운양) 어쨌든 2학기에도 숙대 교양영어 강의장에선 여성해방운동이 활활 타오를 전망이다.수강생의 67%가 다른 과목에도 이런 시도가 적용되길 희망한다니 페미니즘이 더 확산될지도 모를 일이고. 강주안 기자

<사진설명>

영어 듣기 실습을 하고 있는 숙명여대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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