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지식이 정보에 휘둘리는 사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흔히 정보와 지식은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생각한다. 현대를 첨단 지식의 시대, 정보화 사회라고 부르는 게 그렇다. 영어의 정보(information)와 지식(knowledge)도 둘 다 ‘앎’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보와 지식은 같은 층위의 앎이 아니다.

백화점 세일 기간이나 김치찌개 끓이는 법은 정보일 뿐 지식이 아니다. 반면 로마제국이 멸망한 역사나 칸트의 철학을 지식이 아니라 정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정보는 그냥 널려 있을 뿐이다. 친구가 전하는 소문에, 거리에 뒹구는 전단에, 또 인터넷에 정보는 누구나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파편화된 상태로 우리 주변에 있다. 하지만 지식은 다르다. 지식은 그냥 있는 게 아니라 구성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식의 요체는 분류다. 단위 요소들(정보도 그중 하나다)을 적절히 분류하고 체계화해서 얻는 게 지식이다.

정보와 지식 중에 어느 것이 더 깊고 장기적인지는 명백하다. 일상생활에서는 정보가 중요하지만 한 개인의 가치관, 나아가 한 사회의 정책이라면 지식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불행은 얕은 정보가 깊은 지식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편적이고 불연속적인 정보가 체계적이고 연속적인 지식을 비웃고 구박한다. 정보를 운용해야 할 때 지식을 들이대면 모기를 보고 칼을 뽑는 우스꽝스러운 짓이 되지만, 지식을 적용해야 할 때 정보를 적용하면 우스꽝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큰 낭패를 빚게 된다. 코미디언이 정치를 하면 웃어넘길 수 있어도 정치인이 코미디를 하면 재앙이 일어난다.

졸지에 인터넷상의 홍길동이 된 미네르바는 경제학 지식을 제시한 게 아니라 경제 정보를 다루었을 뿐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를 가져다 자기 견해에 맞게 편집했을 따름이다. 지식이 아니라 정보이기 때문에 진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설령 논리에 다소 하자가 있다 해도 블로그 수준의 글에 빈틈없는 논리를 기대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지식을 근간으로 삼아야 할 집단들이 그런 정보 차원의 논의에 좌지우지되었다는 데 있다. 어떤 개인보다도 합리적으로 움직여야 할 시장과 정부가 한 개인이 제시한 파편화된 정보에 장단 맞춰 막춤을 췄다. 그게 창피해서일까? 지금 정부는 그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보복의 칼춤을 추고 있다. 이 코미디는 재앙이다.

정보와 지식의 혼동이 빚은 더 파국적인 재앙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사태의 외양은 시사적인 사건이지만 그 뿌리는 수천 년의 역사에 있다. 기원전 13세기께 모세가 이끄는 유대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신은 그들에게 그 땅을 약속했을지 몰라도 그곳에는 이미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다. 유대인들은 천 년 이상 그곳을 점유하다가 로마제국에 의해 나라를 잃고 민족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는다. 이후 그들은 유럽에서 봉건 영주들에게 이리저리 이용당하고 탄압을 받는다. 대표적인 차별은 부동산 소유권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처럼 허리에 전대를 찬 모습이 중세 유대인의 전형이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은 당연히 조국이 다시 세워지기를 갈망했고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그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도 그랬듯이 팔레스타인은 무주공산이 아니었으니 문제가 없을 수 없다. 과연 공화국이 수립된 그 달에 바로 중동전쟁이 시작된다.

무려 3000년이나 묵은 역사적 문제를 단기간에, 말하자면 한 정치인의 임기 안에 해결하려는 것은 과욕이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문제로 노벨 평화상이 수상된 경우가 세 차례이고 수상자는 여섯 명이나 나왔지만 해결된 것은 전혀 없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이 지역은 노벨상 공장이 될 게 뻔하다.

시사의 뿌리에는 역사가 있다. 시사가 표층의 정보라면 역사는 심층의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보다 정보를 탐하고 역사보다 시사에 밝은 정치인들은 대증요법으로 일관한다. 물론 그들은 현안에 맞춰 정책을 제시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정책도 단기적인 게 있고 장기적인 호흡이 중요한 게 있다. 정책이라는 핑계로 졸속적인 처방만 계속된다면 미네르바는 얼마든지 또 나올 테고, 팔레스타인은 영원히 안정을 찾지 못할 것이다.

남경태 역사 및 철학 저술가

◆약력: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인문사회과학 분야 전문 저자·번역가. MBC 라디오 ‘타박타박 세계사’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