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취임 뒤 북한과 직접대화 시작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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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미국은 북한과 밀도 있는 직접대화를 시작할 걸로 본다. 양측 간 직접대화가 활발해 지면 6자회담은 그걸 뒷받침하는 보조적인 회의체로 기능이 약화할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오바마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이 있고, 주한미군은 감축될 수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북한통으로,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박한식(68·사진) 미국 조지아 대학 석좌교수는 16일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의 미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는 과거의 10년(김대중·노무현 정부)과는 다른 대북 정책을 쓰겠다고 말하지만 오바마의 미국은 한국의 지난 10년과 닮은 행보를 할 것”이라며 “한국이 이런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면 고립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10월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바마 캠프의 외교전문가들과 많은 대화를 한 학자로서 오바마의 외교방향을 예상하면.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세계질서에 지배적인 힘(dominant power)을 행사하려 했다. 오바마는 그런 제압적인 지배는 안 된다고 본다. 그의 외교는 ‘존엄성의 원칙(dignity principle)’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프리카가 삶의 한 배경이어서 그런지 오바마는 가난하고, 짓밟힌 사람들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걸 강조한다. 인간 존엄성의 박탈에서 세계분쟁이나, 테러의 씨앗이 생긴다는 게 그의 견해다. 오바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다른 나라의 존엄성을 살리는 외교를 할 것이다.”

-북한 문제가 오바마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아닌가.

“종교문제까지 얽힌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이란에 비하면 북한 문제는 덜 복잡하다. 적대국과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한 오바마는 자신의 외교 독트린이 효과적이라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걸 비교적 쉽게 증명할 수 있는 상대가 북한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걸로 보나.

“북한도 핵 보유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핵이 국제사회의 외교적, 경제적 제재를 초래하고, 동아태 지역의 핵개발 경쟁을 부추긴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핵을 개발한 건 그것이 체제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핵 해법은 북한 체제 안전 문제와 직결돼 있다. 오바마 측도 그걸 알고 있는 만큼 앞으로 여러 대화 채널을 가동,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갈 것이다.”

-오바마의 4년 임기 안에 북한과 미국이 수교할 수 있다고 보나.

“양측이 대화하면서 신뢰를 쌓으면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다. 북·미가 평화협정을 맺고 수교기반을 닦으면 주한미군 숫자는 줄어들 수도 있다.”

-북한이 최근 핵 시료 채취 거부, 남북 간 육로 통행 제한 등의 조치를 취했는데, 왜 그런 것인가.

“오바마 측엔 ‘우리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며, 남한에 대해선 쌓인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평양에 있을 때 노동신문은 ‘우리 인민군은 빈말하지 않는다. 삐라 살포가 계속되면 방관하지 않겠다’라고 썼다. 그런 다음 나온 게 육로통행 제한 조치다. 그들은 삐라 문제를 민간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건강은 나쁜가.

“증거가 없기 때문에 어떤 추측도 할 수 없다.”

-김 위원장 후계체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북한 최고권력에 공백이 생기면 ‘김 위원장 아들이 세습할 거다’ ‘유혈 군사쿠데타가 일어날 거다’라고 하는 통속적인 견해가 있으나 동의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줄 준비를 한 적이 없고, 군에 쿠데타를 일으킬만한 파벌도 없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 유고 상황이 발생할 경우 엘리트 집단의 유훈 통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더 크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박한식 교수=북한을 40여 차례 다녀온 북한 전문가. 2004년 11월 북한과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트랙Ⅱ 대화’를 개최하는 등 북·미 민간교류에 앞장섰다.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 정책팀장인 프랭크 자누지 등과 친분이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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