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문화의 핵심은 소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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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스페인의 사라고사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 엑스포에 다녀왔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가 한창이다. 엑스포는 미래 지향적인 문화 예술과 기술의 각축장이다. 19세기 중반 과학 기술적 성과물들을 전시하며 시작된 엑스포는 이제 인류 공통의 이슈들을 표명하는 지구적 행사이자 각국의 국가 브랜딩(Branding)의 기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엑스포에는 ‘물과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주제하에 전 세계 104개국이 참가했다. 이 중 인기 있는 선진국의 전시관을 관람하려면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뙤약볕 아래서 그런 고통을 감내했던 것은 세계 각국의 디자인과 예술, 문화와 기술의 수준과 특성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이 현지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어떻게 코리아 브랜딩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안타깝게도 한국관 앞에는 관객의 줄이 없었다. 대개의 후진국 전시관처럼 줄을 서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은 IT 강국이라고는 하나 문화예술 면에서는 아직 세계인들과 잘 소통하고 있지 못했다.

 엑스포가 한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곳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2000년 이후 정보기술과 접목된 문화에 괄목한 투자를 하고 있는 마당에 과연 그 방향이 제대로 맞는지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2012년 여수 해양 엑스포를 비롯해 올가을 서울 공공디자인 엑스포, 2009년 인천 세계 도시축전 등 크고작은 국제행사들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서 기획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 주도 프로젝트들은 공통적으로 첨단 기술과 문화예술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문화 산업을 창출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 방향에 있어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먼저 문화보다는 다분히 기술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이 만남에 있어 우리는 기술 우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상암디지털미디어 시티DMC를 보자. 디지털미디어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세계 최초의 IT 도시를 만들어 한국의 IT 문화를 만방에 알리고자 했던 초기의 야심찬 계획은 결과적으로 이곳을 매력 없는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다.

상암 DMC는 새로운 도시문화가 펼쳐지는 곳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구경하는 곳으로 더 알려졌고, 그나마 기술의 새로움도 이제는 별 이목을 끌지 못한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IT 산업 전체가 침체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고 느끼고 교류하는 문화적 가치를 수반하지 않는 기술, 그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

우리 정부는 문화 콘텐트의 진흥이라는 목표 아래 영화·애니메이션·게임 등의 디지털 콘텐트뿐 아니라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문화예술에 지난 10년간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 물론 고용을 창출하고 국민의 정서를 함양함에 있어 보탬이 된 면을 평가절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투입된 자원 대비, 경쟁력 있는 산업구조를 창출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여러 가지 분석과 평가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글로벌 시장에 관한 이해와 전략 부족이 핵심인 것 같다. 시장은 이미 글로벌화되었는데 우리의 시각과 정서는 아직 국내 지향적이다. 사라고사의 한국관 공연에서 등장하는 정한수와 소복의 여인과 같은 민속적 소재만으로 외국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문화산업의 육성을 위해 현재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자본과 기술에 앞서 문화교차적 시각과 훈련이 아닌가 한다. 우리 문화와 타 문화권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 더 나아가 우리의 이야기를 인류 보편의 관심사로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21세기가 요구하는 새로운 창의성의 주요 덕목이기도 하다. 다음 월드 엑스포에서는 한국관 앞에 관람객이 장사진을 이루기 소망한다.

노소영 서울 예술대학 디지털아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