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산타'를 이해하는 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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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학부모로서는 처음으로 「작은 발표회」라 이름붙여진 유치원 아이의 재롱잔치에 초대받게 되었다.행사 마무리는 산타 할아버지가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며 성탄을 축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등장하자 아이들은 매우 즐거워하며 산타 할아버지가 나눠주는 선물 하나하나에 호기심 어린 눈길을 모았다.
순간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사가 있기 며칠 전 선생님으로부터 아이 모르게 선물을 하나준비해 오라는 말을 듣고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 자그마한 크레파스 하나를 사서 예쁘게 포장했다.그것을 선택할 때 나는 우선 선물의 부피와 가격을 생각해 보았다.부피가 너무 두드러지게 크거나 비싼 물건은 다른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위화감을 조성하거나본의 아닌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나름대로 가장적절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자부심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호명되어 나가는 아이들의 품엔 아이가 안을 수도 없을만큼 크고 멋진 선물들이 안겨지는 것이 아닌가.자꾸만 실망하는 아이의모습이 떠올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우리 아이에게내가 마련한 작은 선물은 산타할아버지가 들어가 고 난 뒤 한복을 차려입은 선생님이 전해주셨다.
여러 아이들의 선물을 꼼꼼히 챙기지 못한 선생님들의 실수였다.어떤 말로 아이를 위로해야 할지 고민스럽고 속이 상했다.
그런데 아이는 내 생각과 아주 달랐다.『엄마 산타 할아버지가굉장히 바쁘셨나봐요.그래서 내것을 잊고 오셨을 거예요.』섭섭해하고 있을 줄 알았던 아이는 자그마한 선물을 안고 나오며 함박꽃처럼 벌어진 얼굴로 말을 건넸다.
남에 대한 깊 은 배려를 할 수 있는 아이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아이의 잠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어머니께서는 『에미야,이 녀석이 이제부터는 집에서 뛰지 않겠다더구나.산타 할아버지가 아랫집에 시끄럽게 뛰어 다녔던 것을 들으신 것같다고 말이다.』온 식구가 한바탕 웃었다.선생님의 실수를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면서.
박영숙 〈강서구등촌동 미주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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