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개편’이 승용차 시장 판도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회사원 김경민(43)씨는 2000년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구입해 현재까지 타고 있다. 김씨가 SUV를 산 것은 당시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의 절반 정도로 쌌기 때문이다. 그는 “휘발유 승용차에 비해 기름값을 많이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해 경유차를 샀다”고 말했다. 김씨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후 경유차의 판매는 계속 늘었다.

그러던 경유차 판매가 주춤거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부터. 정부가 에너지 세제를 개편해 경유값을 휘발유값의 85%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다. 30일 마침내 국내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뛰어넘었다. 경유차 판매도 급속히 줄기 시작했다. 김씨는 “경유값을 휘발유의 85%로 한다는 정부 말을 믿고 경유차를 샀다가 요즘 후회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에너지 세제를 바꾸면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최도영·김수영 연구위원은 연료별로 자가용 승용차의 판매가 달라지는 배경에 ‘에너지 세제개편’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냈다. 최근 펴낸 ‘승용차 연료 상대가격 변화의 파급효과’라는 보고서를 통해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휘발유보다 경유값이 많이 싸면 경유차가 많이 팔렸다. 그러나 휘발유와 경유값의 차이가 크지 않으면 경유 차량 판매가 준다는 것이다.

정부는 2000년대 들어 두 차례에 걸쳐 휘발유와 경유, 수송용 LPG의 상대가격 비율을 조정했다. 1차였던 2000년 7월에 휘발유:경유:수송용 LPG의 소비자 가격을 100:47:26 수준으로 조정했다. 그러자 2002년 전체 자가용 승용차 중에서 휘발유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80.6%로 떨어졌다. 반면 경유차 비중은 11.4%로, LPG차 비중은 8%로 올라섰다. 90년대 후반만 해도 휘발유차는 90%가 넘었고, 경유차는 5%, LPG차는 2.5% 수준이었다.

자동차 생산업체들도 경유차 생산을 늘렸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경유값이 싼 데다 레저를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자동차업체들도 경유차 개발·생산에 박차를 가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2006년 말에는 격차가 더 좁혀져 휘발유차의 비중은 69.9%로 내려갔다. 경유와 LPG차의 비중은 각각 19.3%와 10.9%로 뛰었다. 하지만 2007년 7월에 마무리된 2차 에너지세제 개편으로 다시 흐름이 바뀌었다. 휘발유:경유:LPG 가격의 비율은 100:85:50으로 조정됐다. 당시만 해도 경유값이 휘발유에 비해 아직 싸 경유차는 그럭저럭 팔렸다. 하지만 올 들어 사정이 확 달라졌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1분기에 전체 승용차 내수 판매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늘었다. 하지만 경유차인 쏘렌토(-35.8%)·렉스턴(-24.8%)·투싼(-13%)·윈스톰(-26.2%)의 판매는 크게 줄었다.

협회 관계자는 “잘 팔리던 경유차가 이제는 애물단지가 될 상황”이라며 “합리적인 에너지 세제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