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군도와 함께 사라지는 러 반체제작가 솔제니친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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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러시아의 반체제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쓴 『송아지와 참나무』가 최근 뉴욕에서 『보이지 않는 공범들』(The Invisible Allies)이란 제목아래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62년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통해 처음으로 소련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을 폭로했고 공산주의체제의 본질을 파헤친 『수용소군도』를 해외에서 출간했다는 이유로 74년 강제 출국된후 20년간 미국에서 망명의 세월을 보내야했던 솔제니친 .그의 귀국후 첫출판인 『보이지 않는 공범들』에 대해 미국문학계와 언론이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모스크바의 한 문학평론가가 TV토크쇼 중 던진 질문은 『우리에게 왜 지금껏 수용소군도가 필요한가』다.공산주의의 폭력과 비리를 고발함으로써 국민의 분노를 대변해준 솔제니친의 폭로문학은 수용소군도가 사라짐과 함께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징조다. 솔제니친이 작가동맹에서 축출되던 61년부터 강제 추방되던 74년까지 권력과 문학의 유착과 비리에 대한 폭로와 함께 그의지하출판을 도운 동료들을 공개한 『송아지와 참나무』는 러시아에서 93년 일부가 문학지 『노비 미르』에 소개됐지 만 별 반응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러시아 문학의 적은 이제는 당이 아니라 자유다』.한 작가의지적과 같이 솔제니친이 당면한 현실은 다름아닌 오늘날 러시아 문학의 현실이다.문학이 국가의 선전수단이던 공산주의 소련에서 문학은 국가의 보호와 통제아래 있었다.작가동맹은 창작에 대한 지원과 감시를 전담하는 국가기관이었다.작가동맹은 검열이란 채찍도 휘둘렀지만 그 회원은 출판에 대한 전면 지원이란 사탕도 받을 수 있었다.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러시아의 작가들은 시장경제라는 낯선 현실에 부닥쳤다.검열이 폐지되고 출판의 자유가 확보된 대신 출판사를 스스로 찾아야 했다.
창작활동에 대한 물질적 보장을 확보하지 못한 많은 작가들이 문단을 떠났고 일부 문학지들도 과도한 재정부담을 견디지 못해 폐간했다.소련 최대 문학지이던 『노비 미르』만 해도 최근 몇년만에 발행부수가 150만에서 3분의1로 감소했으며 러시아 출판시장의 특징이던 「밀리언셀러」는 그 말조차 자취를 감췄다.
『서구와 달리 러시아에서의 문학은 문학 이상이었다.오늘날 러시아 문학은 오락물로 전락했다』.러시아 중견작가 발렌틴 라스푸틴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본주의 도입이후 달라진 독자 취향을 이렇게 개탄했다.
러시아 문학사상 한번도 허용된 적이 없었던 섹스와 범죄물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이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게 현지 출판업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문학은 인생의 교과서이고 작가는 스승이다.이는 200년간 러시아 문학을 지배해온 기본 줄기다.그러나 오늘날 러시아의 독자들은 더 이상 톨스토이에게 인생의 의미를 묻지않고 인간 존재의근본을 캐기 위해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펴지도 않는다.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위대한 작가를 갖는 것은 하나의 정부를 갖는 것」이란 솔제니친의 작가관은 빛바랜 신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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