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진실이 중요 … 상 받는 건 다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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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게 꾸준히 신작을, 그것도 빼어난 작품을 내놓고 있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사진)가 신작 ‘체인절링’으로 칸영화제를 찾았다. ‘체인절링’은 1920년대 말 미국 LA에서 벌어진 실화가 소재로, 실종된 9살짜리 아들 대신 엉뚱한 아이를 데려와 사건을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경찰에 맞서 싸움을 벌이는 엄마 크리스틴(앤절리나 졸리)의 이야기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물 흐르듯 유려한 솜씨로, 이 엄마의 끈질긴 싸움과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남기는 상처를 깊은 울림을 담아 그려냈다.

20일(현지시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스트우드 감독은 “경찰조직이 정치적이고 부패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혼자 아이를 키워온 엄마가 자기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는 아들을 찾기 위해 끈질긴 태도로 해답을 구하는 과정을 그렸다”면서 “인간의 특성을 탐구하기 좋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이야깃감의 조건으로 “갈등의 충돌, 극적인 전개” 등을 언급한 뒤, 영화 속에서 크리스틴이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을 두고 “진실이야말로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만 78세 생일을 일주일 앞둔 그는 회견장에서 부러 나이 먹은 태를 내지는 않았지만, 은근슬쩍 자신의 나이를 웃음의 소재로 써먹었다. 이번 영화에 직접 출연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등장하는 소년들 중 하나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다”고 농담을 했다. 그가 무법자 못지않게 거친 형사로 열연했던 영화 ‘더티 해리’(71년)의 속편 계획에 대한 질문에도 “지금 이 나이에 경찰조직에 남아있는 형사는 없을 테니 내가 출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유머를 섞었다. 대신 곁에 있던 앤절리나 졸리가 “내가 하겠다”고 말해 즉석에서 ‘더티 해리엇’이라는 가상의 영화 제목이 나오기도 했다.

이스트우드는 5년 전 ‘미스틱 리버’ 등 네 차례나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지만 수상은 한번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또 경쟁 부문에 온 이유를 묻자 “비경쟁 부문이 안전한 선택이라고들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새 영화를 만들어 소개하고 반응을 얻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심사를 해봤지만 수상작은 누군가 최고라고 여기는 작품이 아니라 집단적인 선택으로 결정되기 마련”이라며 수상 여부에 초연한 태도를 드러내 박수를 받았다.

졸리 역시 여우주연상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의 졸리는 영화제 초반 ‘쿵푸 팬더’ 때보다 한결 차분한 의상으로 등장했다. 졸리는 “이 영화를 찍기 몇 달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꿋꿋하고도 모던한 주인공의 성품에서 내 어머니를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칸=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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