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페놀 재앙 막은 공무원 하천 오염방지 야근 뒤 과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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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알던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다니….”

올 3월 코오롱유화 김천공장에서 화재가 났을 때 ‘페놀의 낙동강 대량 유입 사태’를 막았던 김천시 장지현(56) 환경관리과장이 과로로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일 김천시에 따르면 장 과장은 4월 30일 오후 11시30분쯤 집에 들어온 뒤 세면장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 시간여 만에 그대로 숨졌다. 그는 이날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김천공단 하천에 오염물질이 유입되지 않도록 수문 등의 설치 준비를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다 귀가했다. 김천시 진기상(55) 감사홍보담당관은 “정확한 사인은 모르겠지만, 과중한 업무에다 수시로 늦게 퇴근한 점으로 미뤄 과로가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천시 코오롱유화 공장에서 불이 난 3월 1일 새벽엔 페놀이 섞인 소화용수가 인근 대광천으로 일부 유입됐다. 당시 토요일이라 휴무였지만 평소처럼 오전 5시40분쯤 일어난 장 과장은 화재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어 낙동강 지류 중 하나인 대광천에 물막이 작업을 해 낙동강으로 많은 페놀이 흘러들어가는 최악의 사태를 막았었다. 당시 제때 방재 둑을 쌓지 않았다면 낙동강 전체로 페놀이 흘러들어 영남권 1000만 명이 수돗물 대란을 겪은 1991년에 이어 ‘제2의 페놀 사고’를 부를 수도 있었다.

화재 이후에도 장 과장은 수질오염 방재에 전력을 쏟았다. 대광천에서 오염 토양을 제거하는 등 하천 복원을 위해 쉼 없이 일했다고 직장 동료들은 전했다. ‘휴식도 취하면서 일하라’는 직원들의 걱정에는 “조금 피곤하다고 나만 어떻게 쉬느냐”며 강행군을 이어 갔다. 그러는 사이 경찰 조사와 감사원 감사도 이어져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김천 유화공장 화재 당시 낙동강으로 페놀이 유출되는 것을 막아 낸 장지현 과장의 활약상을 소개한 본지 3월 3일자 12면 기사.

장 과장은 77년 행정 9급 공채로 김천시 대덕면에서 공직을 시작해 기획실과 문화공보담당관실 등을 거쳐 올 1월 환경과장을 맡았다. 31년간 근무하면서 국무총리 표창 등 각종 표창을 10여 차례 받을 정도로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경북도 김동성 환경정책과장은 “고인은 빠른 판단과 헌신으로 영남권 1000만 주민의 식수원을 지켜냈고, 동료 공직자들에게는 공무원으로서의 자세를 온몸으로 보여 준 자랑스러운 분”이라고 말했다.

유족은 김천시 도시행정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내 이은숙(49)씨, 아들 내홍(20)·우홍(19)씨가 있다. 빈소는 김천의료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3일이다. 

김천=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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