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고질병 도진 베스트 셀러 ‘자릿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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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요즘 베스트셀러가 다시 말썽입니다. 최근 KBS ‘시사기획 쌈’에서 출판사의 사재기와 상도를 넘어선 무리한 마케팅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이를 보고 놀랐다는 독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방송 내용 중에는 특히 대형 서점의 매대 ‘자릿값’ 얘기도 있었습니다. 출판계에서는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출판사들은 눈에 띄는 매대에 책을 진열하기 위해 서점에 돈을 내고 자리를 삽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독자들의 눈길을 받지 않고 서점 구석에 꽂히는 일은 책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서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프라인 서점보다 자리 다툼이 더 뜨겁기도 합니다. 대중서일수록 더 그렇죠.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눈에 띄게 노출될 수 있도록 출판사는 자릿값으로 어느 정도의 ‘비용’을 치른다고 합니다.

이제는 인터넷 서점에 올려진 독자들의 서평도 그리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순수한 독자가 올린 것이라고 믿기에는 어쩐지 ‘냄새’가 나는 글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광고인지 홍보인지 헷갈리는 것은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이나 매 한가지입니다.

이미 베스트셀러 순위는 보지도 않는다는 이들도 많습니다. ‘베스트셀러’가 곧 ‘베스트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줄 잘 알면서도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른 책들을 샀다가 후회한 경험을 가진 사람, 설마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이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신봉하지 않을지언정 끝내 무시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독자나 출판사, 모두입니다. 믿을 만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독자는 정말 괜찮은 책들을 놓칠 수 있습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좋은 책을 만드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할 출판인들이 ‘마케팅 강박증’에 걸리다 보니 자꾸 자기계발서만 많이 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독자들이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여기 ‘행복한 책읽기’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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