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어민들, 조업재개 할까말까 고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기름 피해 방제작업이 거의 끝나가자 충남 태안군 근흥면 채석포항 어민들이 조업을 하기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중앙포토]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태안 어민 주영식(53)씨는 고민에 빠졌다. 지난주 정부·자치단체가 몇 차례나 회의를 열고 “사고지점 3마일 밖에서는 조업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충남도·태안군·어촌계로부터 어떤 통보도 없었다. 주씨를 비롯한 어민들은 마을 어촌계장을 찾아가 언제 조업을 해야 하는지 물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어촌계장도 정부나 충남도·태안군으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주씨는 태안군에 직접 전화를 걸어 조업재개 여부를 물었다. 태안군 직원은 “회의에서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말이 나왔지만 공식적인 조업재개 여부는 결정된 것이 없다”고 했다. 주씨는 “조업으로 얻은 수입이 보상에 영향을 미치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알지 못한다. 국제유류보상기금(IOPC)에 문의해라”는 답변만 들었다.

주씨는 충남도와 농림수산식품부에도 같은 내용을 알아봤지만 같은 대답만 되풀이됐다. 주씨는 “어민들에게 직접 IOPC에 문의하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며 “사고 이후 100일 넘도록 조업을 못했는데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씨는 사고 이후 정부에서 지원한 생계지원금 200만원을 받은 게 전부다. 다음달 치를 큰 딸의 결혼식은 지난해 조업으로 모아둔 돈으로 겨우 치를 형편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다음달 초 2차 생계지원비가 지급되지만 150만 원 안팎의 돈으로는 한 두 달도 버티기가 어렵다.

편승환(56) 영항어촌계장은 “태안군청·면사무소를 찾아갔지만 조업재개에 대한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며 “책임 있는 기관인 정부에서 결정을 내려줘야 어민들이 살길을 찾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편 계장은 “지금 조업을 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일부에서 어민들이 조업을 나가는 것은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라며 “정부에서 발표를 늦추는 사이 어민들만 죽는다”고 했다.

정부와 충남도·태안군이 조업재개를 공식적으로 통보하지 못하는 것은 책임소재 때문이다. 이들 기관은 8일 태안군에서 회의를 열고 조업 재개 여부를 논의했다. 조업재개가 발표되면 어판장도 문을 열 수 있다. 이들은 이같은 내용을 어민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IOPC의 보상기준이 조업과 연관되는지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조업재개를 발표했다 불똥이 자신들에게 떨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 기관은 “무리한 조업재개는 어민들에게 피해를 준다. 조업으로 얻는 수익은 보상과 무관하다는 말을 해줄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태안군 조규성 수산행정계장은 “공식적인 조업재개 결정은 정부(농림수산식품부)에서 해야 한다”며 “(정부가)조업을 나간 뒤 잡아 올린 수산물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피해보상 기관인 IOPC는 기름피해 보상금액을 3000억원 수준으로 정했다. 그러나 어민들이 사고 이후 조업을 해서 얻는 수익을 보상금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IOPC는 양식장·음식점·숙박시설 등에 대해서는 피해보상을 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조업부분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하고 있다.

11일 모나코에서 열린 IOPC 총회에서도 이 같은 내용은 논의되지 않았다. 조업재개 여부는 IOPC의 권한이 아니라 해당국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조업으로 올린 소득을 보상과정에서 제외시킬 지 여부도 논의대상이 되지 않는다.

충남도 해양수산과 관계자는 “조업이 가능하지만 공식발표는 시기상조다. 보상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우리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잘못될 경우 책임을 떠안게 된다. 정부와 태안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zino14@joongang.co.kr

▶[J-HOT] 정대철 "나도 죽었는데 아들도 죽이나"

▶[J-HOT] "이혼소송 중 혼외성관계, 간통 아니다" 판결

▶[J-HOT] 박태준 "돈 달라던 실세들, 종이마패에 찍소리 못해"

▶[J-HOT] "은평을 5060세대 박근혜 변수로 문국현에 쏠려"

▶[J-HOT] 美 입양 한인 어린이 4명·엄마 숨진채 발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