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의장 "당사부터 옮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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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의장이 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비상당직자회의를 소집해 비상한 각오를 촉구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5일 고향인 전북 전주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날 자정 무렵 급히 일정을 취소했다. 그러곤 당직자 전원에게 긴급 소집령을 발동했다. 청와대 여택수 행정관이 롯데그룹에서 받은 '검은 돈'이 열린우리당 창당 자금으로 유입됐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치개혁당을 자부해온 열린우리당으로선 총선 가도에서 처음 맞는 위기다. 무엇보다 위기의 본질이 '정체성의 위기'(李美卿중앙위원)라는 데 지도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체 확인 결과 呂씨는 3억원 중 2억원을 안희정씨에게, 安씨는 다시 김원기 고문의 사촌동생 김생기씨에게 보냈다. 문제의 2억원은 당사 임대보증금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386측근들이 대기업에서 받은 불법 자금으로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이날 비상대책회의에서 鄭의장은 "불법 자금이 유입된 줄은 몰랐지만, 몰랐다고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며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수습책을 내놓았다. 당직자들에게 "모두 가서 사물을 챙기고, 짐을 싸라"고 전격 지시한 것이다. 당사 퇴거 시점도 "마음 같아선 (다음주)월요일부터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혁규 상임중앙위원 등이 "총선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만류했지만, 鄭의장은 "불법 자금을 깔고 앉아서는 1당 못한다"고 밀어붙였다. 그는 "부동산에 전화도 하고, 비상팀을 만들어 우리가 갈 곳을 물색하자"며 "폐공장 부지도 좋고, 공터에 천막을 쳐도 좋다"고 했다. 이에 따라 실무자들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폐공장 부지 등의 물색에 나섰다. 초현대식 빌딩의 3개층을 당사로 쓰던 열린우리당이 졸지에 천막 당사를 쓰게 될지도 모르게 됐다. 문제의 2억원은 바로 법원에 공탁했다. 공탁 비용은 총선 예비 후보들이 여론조사 비용으로 낸 돈에서 급히 조달했다.

당사 퇴거와 같은 鄭의장의 극약 처방은 열린우리당이 느끼는 위기의 정도를 반영하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열린우리당은 정치개혁을 위해 태어난 정당인데, 그런 구태정치의 모습을 보인 데 대해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열린우리당에는 이날 오후 거물 영입 공천자들이 잇따라 검찰에 고발됐다는 소식까지 날아들어 정체성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강민석 기자<mskang@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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