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상>추락하는 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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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 미국 경제칼럼니스트의 표현을 빌면 2차대전후 미국은 「자신이 딴 판돈을 다시 돌려주지 않으면 판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있는 의기양양한 승리자」였다.
미국은 전후 의도적인 국제수지 적자라는 형태를 통해 세계에 달러와 금이라는 판돈을 공급함으로써 국제통화제도를 재건,유지했다.세계 각국 통화가치가 달러를 척도로 삼아 매겨졌고 각국의 통화교환은 달러를 통해 매개(媒介)됐으며 각국의 외환준비는 곧달러의 축적을 의미했다.이른바 「전능한 달러」의 시대였다.
이런 달러값이 이제 바닥을 모르게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달러약세는 국제수지 적자와 강한 달러라는 기본적인 모순이 극적으로 표출된 지난 71년의 금태환(金兌換)정지 선언과73년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이후 계속 진행되어온 일이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 투매(投賣)가 벌어지고 1달러 =85엔,또는80엔 소리가 나오는 요즘 상황을 보면 「어쩌다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변동환율제 이행 직전의 스미소니언 환율은 1달러=3백8엔,1달러=3.2225마르크였다.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의 환율을 1달러=90엔,1달러=1.35마르크로 본다면 약 20년동안 엔화와마르크화에 대한 달러가치는 30~40%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제통화로서 달러의 지위에 변동이 없을 수는 없다.수출입대금의 결제라든지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운용,나아가 각국의 외화준비등 국제통화로서의 중요한 기능면에서 달러가 차지하던 비중은 엔화와 마르크에 의해 크게 약화됐다.보다 중요한 매개통화로서의 기능면에서도 달러는 90년대로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마르크에 밀려났다.달러가 아직까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국제통화의 본질적 기능이라 할 수 있는기축통화(基軸通貨.key currenc y)로서의 위치다.그러나 이번의 사태로 달러는 이러한 기축통화로서의 독점적 지위마저위협받고 있다.마르크와 엔화의 기능이 갈수록 확대되고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이른바 「3극(極)통화체제」로의 이행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영국 파운드의 시대가 19세기로 사실상 종언을 고했듯 20세기를 마감해 가는 이제 달러의 시대도 저무는 것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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