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시시각각

지방 균형발전의 미망에서 깨어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정말 수도권 규제를 풀면 지방경제가 다 망하고 말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지방에서 수도권 규제완화를 반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지금의 수도권 규제는 수도권에서 기업 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으면 기업이 지방으로 내려갈 것이란 가정에서 출발했다. 이 가정이 틀렸다는 것은 그간의 경험이 여실히 보여준다. 수도권에서 공장을 짓거나 늘리기 어려운 기업은 지방 대신 중국과 베트남으로 떠났다. ‘수도권 규제=기업 지방 이전’이란 등식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지방경제 활성화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은 수도권 규제에 지방이 그토록 매달리는 것은 앞뒤가 맞질 않는다. 물론 수도권의 규제를 풀면 외국으로 떠나려던 기업이 수도권에 남고 수도권에서의 기업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수도권의 소득이 늘고, 결과적으로 지방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을 규제한다 해서 지방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지방에서 수도권 규제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수도권의 발목을 잡아 상대적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그렇다고 지방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수도권 규제는 지방을 발전시키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수도권에 경제와 인구가 집중되면서 교통과 주거환경이 악화되자 이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수도권 과밀화 억제 대책이 그것이다. 수도권을 억누르기보다는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그것이 수도권 발목잡기로 변질된 것은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다. 지방의 표를 의식해 한편으론 수도권을 규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새만금사업 같은 국책사업으로 지방의 환심을 사려 했던 것이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방 균형발전 정책에 역점을 두면서 수도권 규제는 흡사 불가침의 성역처럼 돼 버렸다.

노무현 정부의 지방 균형발전 정책의 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수도권을 계속 묶어두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수도권의 기능을 강제로 떼어 지방에 나눠주는 것이다. 수도 이전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이 그것이다. 노 정부는 그 자체로 논리에 맞지 않고 효과가 검증되지도 않은 지방 균형발전 정책을 신주단지처럼 떠받들었다. 임기 말까지 행정복합도시와 혁신도시 건설에 목을 맸다. 행정도시든 혁신도시든 일단 시작하면 해당 지역에선 큰 이권이 된다. 땅주인은 땅값이 올라 좋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돈을 끌어다 쓸 수 있으니 좋다. 이렇게 이권화된 사업은 여간해선 되돌리기 어렵다. 지역여건에 얼마나 부합하고 지방경제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지는 둘째다. 우선 끌어다 놓고 보자는 지역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경쟁심리를 조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다고 과연 지방이 살아나겠는가.

이젠 지방 균형발전이란 헛된 미망에서 깨어나야 한다. 전국을 모두 수도권처럼 만들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지역마다 여건과 특색이 다르다.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것이 서울과 똑같이 되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방의 발전은 지방 스스로 하는 것이지 중앙정부가 대신해 줄 수 없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