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연구기관 질적 개편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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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화를 향한 국가전략에서의 기술력 확보,특히 원천적 기술력확보의 주역을 맡고 있는 과학기술계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에 대한개혁및 조직개편 논의가 또다시 일고 있다.민영화와 통폐합설,굵직한 개혁방안들이 소문으로 나돌면서 분위기가 뒤 숭숭하다.
「개혁」이란 이름아래의 변화는 5共 초기 대폭적인 통폐합 작업을 시작으로 그 이후 여러번 있어 왔다.필자가 속해있는 기관도 80년他연구소와의 통합을 거쳐 10여년동안 소모성 고전을 하다가 다시 분리되었고,89년에는 다시 다른 교육기 관과 통합되었으며,지방으로 이전까지 하게 되는등 지난 십수년간 참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만은 아닐 것이다.자르고,줄이고,합치고,나누고,이관하는 등 소위 「量의 개혁,외형(外形)의 개혁」이 과거개혁의 모습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이러한 量의 개혁은 시계추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는 회귀성,반복성을 보여왔 다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이번만은 달라야 한다.우선은 접근방법의 근본적인 발상전환이 요구된다.다시 말하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은 또다른 量과외형의 개혁이 아니라 근원적인 요인분석과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는 「質의 개혁」이라는 것이다.質의 개혁이 선행되지 않는 量의 개혁은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質의 개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성실하게 연구하고 소명감을 갖는 연구집단을 보다 신명나게 하고,동시에 무임(無賃)승차자들이 있다면 스스로 유임(有賃)승차자로 바뀌거나 자연스레 솎아지는 그러한 모습이어야 할 것이■ .
이를 위해 質의 개혁은 첫째,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소위「참여조건(Participation Incentive)」을 만족시키도록 설정되어야 한다.무임 또는 저임(低賃)승차자를 대상으로한 개혁안들이 자칫 선의의 집단에까지도 불안. 사기저하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자발적인 참여에의 동기가 결여된 외형적 개혁은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러번 보아왔기 때문이다.기회만 주어지면 대학이나 민간기업 등으로 옮길 생각을 하는 연구원이 많다는 현상황에서의 질 적 개혁은 몸 또는 마음이떠나 버리게 하는 것이어선 안된다.참여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채찍을 드는 감점(減點)주의 보다는 당근을 주는 가점(加點)주의의 비중이 커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로 質의 개혁은 신시대 경영 패러다임으로 이미 너무나 잘알려져 있는 자율.책임및 경쟁의 틀안에서 짜여져야 한다.자율성은 특히 연구하는 사람에게 필요하다.연구의 질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선의의 공정한 경쟁은 연구활동에서 도 당연히 필요하고,이 경쟁이야말로 자연스레 무임승차자를 걸러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는 인내심을 가지고전시효과와 일과성 행사로 특징지워지는 양과 외형의 개혁을 최소화하고,하루아침에 눈에 띄는 결과가 없더라도 質의 개혁을 주축으로 하는 방향을 설정하기 바란다.질의 개혁의 중요성,자율과 경쟁의 필요성에 비 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가점제도에 근거한 제1 참여조건의 중요성은 거의 무시되는 것이 현실이다.정부는 모든 개혁방향 설정에이 점을 각별히 신경써주기 바란다.지상에 거론되는 총액 연구원가제,프로젝트수주 경쟁체제화 등의 질 적 개혁안은 경쟁의 촉진이라는 제2 요건은 만족시키는 것으로 보이나 제1의 자발적 참여조건에 대해선 보다 많은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자발참여 유도가 요체 이와 동시에 과학기술계 스스로도 이번 기회를 양의 개혁에서 질의 개혁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대다수가 뒤안길에서 묵묵히 자기의 맡은 연구에충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계는 상호불신,일방적 지원요구,연구결과의 미약,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집단 등 그리 듣기 좋지 않은 평가도 받고 있다.이러한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質의 개혁에 대한 스스로의 비전과 계획을 능동적으로 수립해 국민과 정부를 설득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과학기술계의「리엔지니어링」으로 가는 길이다.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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