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아이

진정한 일류 기업이 되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 부동산 업자는 스웨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엄청난 액수에 속이 쓰리기는 했지만 핀란드 정부의 재미난 발상에 며칠 동안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유럽에서는 핀란드의 벌금 체계를 일명 ‘노블레스 오블리주법’이라고 부른다. 돈을 많이 버는 만큼 사회적으로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법이기 때문이다. 얼른 생각해 봐도 헌법상 평등, 과잉금지 원칙 등과 충돌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런 발상에 대한 사회적 저항은 그리 크지 않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법을 더 잘 지키라는 취지고 사실 법을 잘 지키기만 하면 수천만원씩 날릴 일도 없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 지도층일수록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는 프랑스 격언이다. 이 말이 처음 쓰인 것은 1830년대 나온 발자크의 소설 ‘골짜기의 백합’에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회적 약속은 이 말이 탄생하기 오래 전부터 이미 유럽 사회에서 뿌리내렸다.

로마시대 초기 귀족들은 앞다퉈 조국에 대한 충성을 보였다. 그걸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평시에는 거액의 돈을 경쟁적으로 국가에 내맡겼다. 전쟁이 나면 전쟁터에 먼저 뛰어들었다. 로마제국의 힘은 바로 이런 고위층의 책임의식에서 나왔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생각이다. 이 같은 전통은 현대로 넘어와서도 유럽 사회 곳곳에서 묻어난다.

최근에는 유럽의 기업들이 이른바 사회공헌활동(CSR)이라는 이름으로 실천하고 있다. 영국의 막스 앤드 스펜서 본사에는 대형 전광판이 설치돼 있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지원 프로그램과 이산화탄소 줄이기 프로그램의 진척사항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본사 직원들은 물론 외부에도 알려 자사의 좋은 일을 선전하고 동참을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프랑스의 유가공업체인 다농은 지난해부터 ‘사랑의 요구르트’를 만들고 있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을 위해 싼값에 우유를 대주고 현지 공장에서 요구르트로 만들게 한 것이다.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은 값싼 요구르트를 마실 수 있고 젊은이들은 요구르트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기업이 국가의 경쟁력을 대신 말해준다는 사실은 유럽 곳곳에서 피부로 느껴진다. 유럽 언론은 독일 경제를 설명할 때 BMW를, 프랑스의 무역 현황을 얘기할 때 에르메스·디오르를 예로 든다. 이들 유럽의 대표 기업들은 물론 훌륭한 제품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 밑거름이 됐음은 누구나 인정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우리 기업들은 오랜만에 떳떳하게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있다. 벌써부터 기업 활동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덧붙여 한가지 바람이 있다. 우리 기업들도 서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어떻게 우리 상황에 맞게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유럽의 큰 부자들을 보면 돈벌이만 잘해선 세계 일류 기업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진배 파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