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잊어야 할 편법 할인의 단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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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화된 도서정가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입니다. 10월 20일부터 도서정가제의 규제를 받는 신간의 기준이 발행일 이후 12개월에서 18개월까지로 확대됐고, ‘할인쿠폰’도 없어졌습니다. 또 인터넷 서점에서만 가능했던 신간 10% 할인혜택을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받을 수 있게 됐지요. 내년 1월부터는 그 동안 권당 5000원까지 가능했던 인터넷 서점의 마일리지가 책값의 10%까지로 축소됩니다.

기존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난 5년 동안 ‘정가제’란 명칭이 무색할 만큼 다양한 편법 할인이 횡행했습니다. 법이 허용하는 인터넷 서점의 신간 할인율은 10%지만 실제 할인 폭은 30%가 넘었습니다. 직접할인 10%에 ‘1000원 할인쿠폰’, 또 책값의 10∼15%에 해당하는 마일리지가 기본이었으니까요. 거기에다 신간 한 권을 사면 다른 책 한 권을 끼워주는 ‘1+1’, 심지어 ‘1+3’이벤트까지 있었으니 제값 주고 책 사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도 없었지요.

2003년부터 시행된 기존 도서정가제가 인터넷 서점에만 신간 할인판매를 허용한 데는 ‘IT 산업 육성’이 명분이 됐습니다. 그 약효가 너무 셌나요. 그동안 동네 서점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습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6년 5378곳이었던 전국의 서점 수가 2005년에는 2103개로 줄어들었다지요. 독자들로서도 책을 직접 보고 구입할 기회가 줄어드니 결국엔 업체의 마케팅 전략에 말려들 수밖에요. 또 ‘박리다매’ 인터넷 시장에서 독자층이 제한된 학술·전문도서는 점점 홀대 받았고, 할인 판매를 연두에 둔 가격 책정으로 책값은 다락같이 올랐습니다.

이런 부작용들을 줄이려고 도서정가제가 강화됐는데, 이게 또 웬 일입니까. “책 값이 너무 많이 든다”는 독자의 불만이나 “사이트 방문자의 책 구매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인터넷 서점의 반응이야 예상됐다지만, 출판사들 사이에서까지 “쿠폰 이벤트도 못하면 신생사 책은 어떻게 알리냐”며 하소연 하니 말입니다.
 
한 일인출판사 대표는 “독자들이 할인 폭의 규제를 받지 않는 구간(舊刊)을 선호하게 되면 결국엔 역사가 긴 대형출판사만 유리해질 것”이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하긴 새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인터넷 서점들이 대형출판사의 구간들을 모아 소개하는 ‘브랜드 전’ 을 활발히 벌이는 것을 보면 그 ‘예언’이 적중할 가능성도 커 보입니다.

출발부터 삐걱대는 새 도서정가제가 걱정스럽습니다. 먼저 법의 사각지대를 발견하는 쪽이 시장을 장악하는, 기존 도서정가제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텐데요. 그러려면 독자와 출판사·서점 모두 반짝 기쁨을 안겨줬던 편법 할인의 단맛부터 빨리 잊어야겠지요.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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