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역사] 5. 일본과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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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입대한 지 6개월이 지나면 누구나 다 일등병이 된다. 그리고 간부 훈련생 시험을 치르게 된다. 나는 안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백지를 냈다. 갑종은 수송학교에, 을종은 하사관 학교로 갔다. 나는 도요타 트럭 한대를 배치받아 주로 행동(行動)이라는 것에 나갔다. 말을 끌고 더덜거리며 다니는 김대만(金大万.전 부산시장)을 보고 "야 마부야!"하고 골려대는 것은 하나의 애교였다.

나는 나고야 근방의 주요 도시를 돌며 물자를 수송했다. 기후.고로모.세도.이치노미야.이누야마 등. 특히 태평양으로 쭉 뻗어나가는 지타 반도에 나갈 기회가 많았다. 나와(名和)라는 곳의 논바닥 한복판에 근사한 회사 건물이 하나 있었다. 후미코라는 달덩이 같은 아가씨가 찐 고구마 말린 것을 한보따리씩 싸주었다. 내가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 '히데코'로 그린 것은 바로 이 아가씨다. 그땐 나도 동그란 볼때기에 눈빛도 싱싱했으리라. 한번은 정초에 자기 집에 가자고 해서 부모에게 소개해 준 적도 있었다. 걸핏하면 B29 공습이라 어디 단 둘이서 속삭여 볼 기회도 없었다. 작품에서 그녀를 위기에서 구출하고 포옹하고 끝내는 히코네로 도망간 것은 픽션이다. 부대에 돌아오면 그녀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한번 껴안아 주고 싶었다.

당시 일본 본토에는 젊은이가 드물었다. 그 많은 처녀가 얼마나 외로워했을까. 그래서 새파란 우리를 보는 눈들은 뜨거웠다. 나는 바보였지만 리노이에는 달랐다. 그가 견습하사관 계급장을 달고 돌아왔을 때 아마 내가 제일 기뻐했으리라. 그와 단짝이 되어 행동에 나가면 어디에서 전쟁을 하고 있든 말든 관심 밖이었다. B29 편대가 날아오면 우리는 90도 꺾어서 도망쳤다. 히가시야마 공원의 식물원 근처에 많이 숨었다. 한번은 도요하시로 원거리를 뛰었다. 한 내무반의 나가사카 일등병이 자기 집에 들러 달라고 했다. 찾아 갔더니 부인이 반색을 하고 자기 여동생 둘도 소개해 주며 진수성찬을 차려내지 않는가. 당시의 우리 위는 쇳덩이를 먹어도 소화해줄 능력이 있었다. 리노이에의 거구는 사양없이 거둬들였다. 마시지 않는 술을 한잔 마신 나는 깜빡 졸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눈을 뜨니 아가씨가 혼자 앉아 있었다.

"이 친구 어디 갔나요?"물으니 살짝 웃었다. "오실거예요."나는 시계를 보고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었다. 리노이에가 불콰한 얼굴을 하고 나왔다. 세 자매는 "또 오세요!"손을 흔들었다. 출발할 때 리노이에는 크게 트림을 하고 나서 "어~허, 오랜만에 기분 좋~다"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이 세상에서 기분 좋은 것처럼 좋은 게 어데 있노. 니 그 척하는 병 고쳐줄까? 여동생 둘 대기시킨 거, 왜 그랬는지 모르나? 지금 일본의 처녀들이 환장할 지경이라."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술 한잔 마신 탓인가. 좁은 도카이도(東海道)가 넓게 보였다. "니 인생을 아나? 간단하다. 입으로 집어넣고 아래로 싸는 기라! 이제부터 형님이 하나 둘 가르쳐 주꼬마. 천천히 좀 달려라. 이 자슥아!"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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