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기자와 도란도란] 투자도 연애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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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변덕쟁이다. 똑같이 해줬는데도 어떤 때는 좋고 어떤 때는 싫단다. 종잡을 수 없다. 건망증도 심하다. 잘 해준 것도 못 해준 것도 금방 잊어버린다. 조그만 일에도 어찌나 불 같이 반응하는지…. 화를 내다가 웃기도 잘한다. 조울증 증세가 하늘을 찌른다.

 이런 사람, 사귀기 힘들다. 남자 친구가, 혹은 여자 친구가 이런 성격이라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당장이라도 헤어지고 싶겠다. 그래도 그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때문에 헤어질 수 없다면? 적당한 밀고 당기기로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요즘 주식시장이 꼭 이렇다. 변덕스럽고, 건망증 심하고, 조울증 증세까지 있다. 금리를 내리면 반응은 ‘그때그때 달라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내리면 시장은 호재로 인식한다. 금리를 내리니 주식 투자의 매력도가 높아지고, 싼값에 돈을 빌려 투자할 수도 있어서란다. 교과서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어떤 때는 정반대다. FRB가 금리를 내리면 “경기 둔화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며 악재로 인식한다. 일단 주식을 던지고 본다.

 8월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우려가 시장을 휘감았다. 전 세계 증시가 급락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증시가 과민 반응했다는 고해성사와 함께 중국·인도 등 신흥시장의 강세가 부각되며 금방 상승세로 돌아섰다. 그러다 이달 들어 다시 문제가 됐다. 어차피 8월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금융기관의 손실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그런데 잠시 잊어버리고 있다가 금융기관들의 3분기 실적이 나오면서 시장이 반응한 거다.

 게다가 그 반응의 정도가 도를 넘어선다. 같은 재료를 놓고 호재와 악재로 번갈아 인식하면서 주가가 4% 이상씩 오르내린다. 하루 변동폭이 80포인트를 왔다갔다 한다. ‘미래에셋 해바라기’ 투자를 하며 미래에셋이 사는 종목을 무섭게 따라 사 주가를 밀어 올리더니 이제는 확인되지도 않은 루머에 덮어놓고 팔고 본다.

 투자는 어렵다. 이런 시장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시장과 ‘바이바이’ 할 순 없다. 기대수익이 은행 이자의 2∼3배에 달하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나. 눈 딱 감고 인연을 끊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주식이다.

 그렇다면 주식투자도 연애처럼 밀고 당기기가 필요할 듯싶다. 좋다고 무턱대고 들이대다간 연인에게 상처 입는다. 덥석 부실주를 당겼다간 치명적 손실에 치를 떨 수 있다. 요즘 전 세계 시장이 심상치 않다.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투자에는 ‘독’이다. 적당히 거리를 두며 내 사람을 만드는, ‘연애의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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