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망하고 호떡으로 재기 '밑지는 장사 안한다' 철칙 생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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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02면

본죽과 본비빔밥 프랜차이즈 회사인 bjif㈜를 경영하는 김철호(44) 사장에게 지난 10년은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롤러코스터였다.

'본죽'김철호 사장이 안에서 본 10년

외환위기 이전에 그는 직원 60여 명을 거느린 어엿한 수입업체의 사장이었다. 1986년 설립한 이 회사는 이탈리아 등 유럽 등지에서 고급 욕실용품을 수입해 대기업과 서울 강남 등 중상류층 고객들에게 팔았다. 서울올림픽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으로 달궈진 소비 고급화 분위기를 타고 그의 사업은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사업을 잘하나 보다"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외환위기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슬금슬금 오르는 환율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설마 외환위기가 올 줄은 몰랐다”고 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텼지만 결국 1년 만에 부도를 내고 말았다. 그날 밤 잠이 올 리 없었다. “아침 일찍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를 탈까.

남은 거라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돌려놓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김 사장은 정도를 걷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자 기다리고 있던 채권단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다. “부도 내고 안 도망간 사람 처음 봤다”는 거였다. 두어 달간 집까지 팔아 회사를 정리하고 직원들을 내보낸 그는 처자식을 처가로 보냈다. 자신은 서울 남영동의 한 요리학원에 들어갔다. 청소 등 잡일을 해주고 숙식 제공과 요리 강습을 받는 조건이었다.

한창 어려운 때였지만 사업가의 본능은 잠들지 않았다. 친구가 빌려준 75만원으로 포장마차를 사서 학원 앞 공터에서 호떡을 구워 팔기 시작했다. 대학가여서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많은 데 착안한 것이다. 그의 포장마차는 곧 명물이 됐다. 맛도 맛이었지만, 넥타이까지 맨 정장차림으로 호떡을 굽는 게 화제가 됐다. 마케팅도 앞서 나갔다. 부채로 냄새를 피워 지나가는 사람을 뒤돌아보게 하고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손님을 조금씩 기다리게 하기도 했다. 여기서 체득한 ‘맛있게, 푸짐하게’라는 노하우는 그가 재기할 때 큰 밑천이 됐다.

2001년 그는 대학로 골목길의 2층 가게를 빌려 본죽이라는 죽집을 냈다. ‘죽은 환자들이나 먹는 음식’이라는 선입견이 강했던 때, 개업 첫날 든 손님은 예닐곱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죽이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은 대체음식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전단을 한 장씩 리본으로 묶어 인근 지하철역에 돌리고 좋은 재료를 써 푸짐한 죽을 내놓자 단골이 하나 둘씩 늘었다.

석 달이 지나자 하루 100그릇이 팔렸고, 한두 달이 더 흐르자 1층 계단 입구부터 손님들이 줄을 섰다. 6개월여 뒤인 2003년 봄, 그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가맹점을 내주기 시작했다. 4년여가 지난 지금 본죽은 전국에 8000개 가맹점을 두고 한 달에 200만 그릇을 파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됐다.

김 사장의 경영 스타일은 완전히 바뀌었다. 외환위기 전 그는 여느 사장들처럼 수익성보다 매출을 중시하고 환율 등 외부변수에 둔감했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회사 몸집이 커져도 현금은 언제나 부족했다. 발행한 어음 만기일에 대금을 마련하고, 받은 어음은 곧장 명동에서 할인해 현금화하다 보면 “내가 사업을 하는지, 어음 심부름을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과거의 이런 경영방식은 이젠 옛말이 됐다. 가맹점을 받을 때는 장사가 될지, 현금흐름이 어떨지를 먼저 따져본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방송과 신문에서 정치·경제·사회적 이슈를 챙겨본다. 어음이 사라진 만큼 현금 유동성을 더 신경 쓰게 됐지만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게 됐다.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의 마음속엔 항상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남아 있다. 같은 노력을 하고도 기회나 운이 닿지 못해 자신처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프랜차이즈라는 점도 그렇다.

“외환위기 뒤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나 창업준비를 못한 사람이 많았고, 이들이 노하우와 물류를 제공해주는 프랜차이즈 회사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점이 성공의 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쉬운 길보다 옳은 길, 당장의 이익보다 고객과 가맹점, 회사가 모두 윈-윈 하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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