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뮤지컬 ‘공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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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빠르고 숨가쁘다. 뮤지컬 ‘공길전(戰)’(사진)은 지금껏 한국 뮤지컬이 도달하지 못했던 ‘속도의 미학’을 맘껏 뽐내는 작품이다. 수백개의 컷과 분절된 편집 화면, 클로즈업 등으로 무장한 뮤직비디오 혹은 최근 영화 트렌드를 닮았다. 초연 당시 세 시간 가깝던 공연 시간은 인터미션도 없이 100분가량으로 확 줄어들었다. 암전도 단 한차례 뿐이다. 암투와 연민, 복수와 코믹함이 후두둑 지나간다.

 스피드의 비결은 무대 장치다. 공간은 궁궐마당·희락원·밀실 등으로 쉴 틈 없이 바뀌지만 무대 세트가 덩그러니 하나 뿐이다. 단 180도 회전이 가능하다. 앞뒤가 뒤바뀐 상징적 코드로 공간을 채워가는 식이다. 자연스레 거대한 세트를 옮기면서 생기는 ‘틈’이 발생하지 않는다. 시간은 단축시키되 밀도감은 최대한 끌어올린다.

 왜 그랬을까. 지루함을 못 견뎌하는 젊은 관객의 기호를 고려했기 때문 아닐까. 무엇보다 ‘공길전’의 원작인 연극 ‘이’는 영화 ‘왕의 남자’로 탈바꿈하면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공연을 보는 대부분이 이미 스토리를 숙지한 상태다. 굳이 변주를 울릴 필요 없이 핵심으로 그대로 치고 들어가도 무방하리라 제작진은 판단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작품은 근본부터 휘청거렸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건에 지루함은 없앨 수 있었지만 관객의 감정이입이 들어갈 ‘틈’ 역시 사라졌다. 여기에 노랫말은 스토리 전개란 임무를 띄게 되면서 운율·리듬감·각운 등의 요소는 거세되고 ‘구겨넣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주는 부분도 있었다. 음악 역시 통일성을 증발시켜 버린 채 신명나는 장단에서 급전직하, 애잔한 발라드로 갔다가 또다시 끈적한 재즈로 널 뛰듯 옮겨다녔다. 스피드에 집착해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새로운 형식 미학은 주제를 부각시키고, 공감을 넓혀가야 더욱 빛나는 것 아닐까. ‘공길전’에 현재 필요한 건 숙성과 여유다.

 30일까지 충무아트홀. 10월 12일부터 17일까진 경희궁 야외 무대에서 볼 수 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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