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의 비결은 무대 장치다. 공간은 궁궐마당·희락원·밀실 등으로 쉴 틈 없이 바뀌지만 무대 세트가 덩그러니 하나 뿐이다. 단 180도 회전이 가능하다. 앞뒤가 뒤바뀐 상징적 코드로 공간을 채워가는 식이다. 자연스레 거대한 세트를 옮기면서 생기는 ‘틈’이 발생하지 않는다. 시간은 단축시키되 밀도감은 최대한 끌어올린다.
왜 그랬을까. 지루함을 못 견뎌하는 젊은 관객의 기호를 고려했기 때문 아닐까. 무엇보다 ‘공길전’의 원작인 연극 ‘이’는 영화 ‘왕의 남자’로 탈바꿈하면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공연을 보는 대부분이 이미 스토리를 숙지한 상태다. 굳이 변주를 울릴 필요 없이 핵심으로 그대로 치고 들어가도 무방하리라 제작진은 판단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작품은 근본부터 휘청거렸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건에 지루함은 없앨 수 있었지만 관객의 감정이입이 들어갈 ‘틈’ 역시 사라졌다. 여기에 노랫말은 스토리 전개란 임무를 띄게 되면서 운율·리듬감·각운 등의 요소는 거세되고 ‘구겨넣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주는 부분도 있었다. 음악 역시 통일성을 증발시켜 버린 채 신명나는 장단에서 급전직하, 애잔한 발라드로 갔다가 또다시 끈적한 재즈로 널 뛰듯 옮겨다녔다. 스피드에 집착해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새로운 형식 미학은 주제를 부각시키고, 공감을 넓혀가야 더욱 빛나는 것 아닐까. ‘공길전’에 현재 필요한 건 숙성과 여유다.
30일까지 충무아트홀. 10월 12일부터 17일까진 경희궁 야외 무대에서 볼 수 있다.
최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