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워 The War, 그녀는 여드름과 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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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28)씨는 12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여드름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얼굴을 점령한 여드름은 지금까지 이마, 볼, 콧등, 가슴 등 주둔지를 바꿔가며 틈만 나면 공격해왔다. 12년간 계속된 그녀의 여드름과의 전쟁은 과연 종결될 것인가?
이번만큼은 소탕하겠다고 맘먹은 그녀, 꽤 치밀한 전략과 작전을 세운 듯하다. 다음은 그녀의 ‘전쟁일지’ 중 하루 동안의 기록과 피부과 전문의의 조언이다.

■주적[主敵] : 여-드-름, 과연 어떤 생명체인가?

여드름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외계 물질인 듯 보인다. 조금만 방심하면 얼굴 전체를 뒤덮고 등, 가슴까지 끔찍한 흉터를 남긴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흰 여드름, 검은 여드름, 곪은 여드름, 덩어리진 여드름 등 수시로 모습을 바꾸며 나타난다.
흰 여드름과 검은 여드름은 해결하기 쉽다. 잘 치료하면 흉터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곪은 여드름과 덩어리진 여드름은 없애기가 쉽지 않고, 상흔도 남긴다. 특히 덩어리진 여드름은 제일 무시무시한 놈이다. 이미 내 얼굴에는 많은 흉터들이 있다.
advice 여드름별로 치료하는 방법도 다르다. 곪은 여드름과 덩어리진 여드름은 이미 염증 반응이 시작된 것이어서 절대 짜지 말 것. 저절로 터지거나 염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큰 흉터가 남는다.

AM 07:00 기상 후 꼼꼼히 세안. 밤새 쌓인 노폐물은 여드름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폼 클렌징으로 빡빡 깨끗하게 씻어낸 후, 모공이 잘 열리도록 필링제로 각질 제거를 해줬다.
advice 뽀드득, 뽀드득. 세안할 때 이 소리를 즐기는 것은 여드름 치료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무 심하게 피부를 문지르면 여드름 악화만 부추길 뿐. 또한 폼 클렌징이나 필링제를 과도하게 사용해서 얼굴을 닦아내면 피지선을 더욱 자극해 훨씬 많은 피지가 분비되므로 주의한다. 특히 외출하기 전이나 메이크업 전, 필링제 사용은 좋지 않다.

AM 7:15 운동은 필수!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틈타 안양천변을 걸었다. 약간 빠른 걸음을 유지해 30분 정도 지속했다. 규칙적인 아침 운동은 쉽지 않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고 있다.
advice 여드름이 있다고 방안에만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박지성 등 스포츠선수들이 여드름이 많다고 해서 운동이 여드름에 좋지 않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정보다.
여드름에 특히 좋은 운동은 걷기다. 약간 빠른 걸음의 걷기 운동을 일주일에 4번,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해주면 체온이 올라간다. 몸 스스로 체온 조절을 하기 위해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하면 땀샘이나 기름샘에 혈액공급이 원활해져서 노폐물이 배출된다. 운동이 끝난 후, 세안으로 땀과 피지를 제거하면 피부는 더욱 튼튼해진다.

AM 9:00 취업 준비를 위해 학원에 가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은 여드름의 지원군. 자외선 차단제는 필수다! SPF 지수가 높은 것을 선택해야지.
advice 햇빛을 피하기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은 좋지만 차단 지수를 무작정 제일 높은 것으로 선택하는 것은 실수다. 여드름 피부는 먼저 유분 햠량을 따져야 한다. 자외선 차단제에 ‘Oil free’ 라고 적혀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무난하며, 2시간 간격으로 덧바르는 게 좋다.

AM 10:30 강의 중 쉬는 시간. 휴게실에서 커피 대신 녹차를 마신다. 옆에서 무식하게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 흡연은 여드름에 좋지 않다고 했는데, 간접흡연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살금살금 옆자리로 이동했다.
advice 여드름 치료가 절실하다면 흡연은 절대 금물이다. 흡연은 피부의 수분을 빼앗기 때문에 피부가 탄력을 잃고 푸석푸석해진다. 또 피지 분비를 활성화시켜 모공을 막고 여드름이 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든다.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피지선을 자극해 체내 피지의 양을 늘리므로 커피 대신 섬유질과 비타민 A,B,C 등의 섭취량을 늘리자. 그런 점에서 천연 과일로 만든 음료수가 좋고, 녹차도 여드름에 좋은 음료 중 하나다.
녹차 잎에는 데오피린과 카테킨, 데아닌(커피에는 없는 성분)이라는 성분들이 있어 카페인을 불용성 성분으로 만들고 그 활성을 억제하기 때문에 카페인으로 인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카데킨은 피부에 수렴작용, 진정작용을 일으켜 탄력 있는 피부를 만들어 주고 노화를 방지한다. 녹차에는 레몬보다 5~8배 많은 비타민 C, 토코페롤이 있어 멜라닌 색소의 침착을 방지해주고, 여드름 치료제인 비타민 A와 B2도 들어 있다.

PM 12:00 강의가 끝나고 근처 밥집으로 이동. 여드름이 좋아하는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 기름기 있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advice 이론적으로 여드름과 음식물과의 연관성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피하지방층에 기름이 축적돼 살이 찌는 것이지, 피지 분비가 더 왕성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이스크림, 초콜릿, 커피 등도 여드름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음식 등은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염증을 심화시키고 피부 회복을 느리게 하는 등 전반적으로 몸의 균형을 흐트러지게 하므로 삼가는 게 좋다. 여드름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는 감자, 당근, 무, 키위, 양배추, 도라지, 사과, 보리, 콩 등의 신선한 채소와 과일, 살코기 등이 있다.

PM 1:00 ‘제3의 적’ 발견. 힐끔거리는 주위의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다. 내 얼굴의 여드름이 그리도 안타깝게 보이는 걸까?
advice 여드름은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정신적 변화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쳐다만 봐도 고개를 못 들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삼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정한 곳, 즉 얼굴만 쳐다보는 게 아니다. 사람 전체의 이미지를 본다. ‘즐거움에 찬 얼굴은 한 접시의 물로도 연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밝은 표정으로 자신감 있게 사람들을 대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PM 2:00 장장 4시간 동안 인터넷 동영상 강좌를 들어야 할 시간이다. 한 번 맘먹었을 때 해치우자. 아차, 컴퓨터 열기로 혹여 열이 올라 여드름이 솟구칠 수 있으니 에어컨을 키고 시작하자.
advice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오감을 사용하게 된다. 때문에 감각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런 스트레스는 몸을 교란시켜 여드름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중간 중간 시원한 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PM 9:30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자 친구와 다퉈서 우울하니 술이나 마시자고. 술은 여드름의 최대 적! 미안하다, 친구야. 나 아직 전쟁 중이야.
advice 맞다. 술은 여드름 피부에 치명적이다. 정신적으로는 술이 스트레스를 없애줄 수 있지만 육체적으로는 몸을 피로하게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부신피질에서 생성되는데 이때 여드름을 유발하는 안드로겐 생성이 촉진된다. 술 마신 다음날 화장이 더 잘 받는다거나 피부가 생기 있어 보인다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피부 온도 상승에 의한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보통 음주 후에는 피부가 나빠진다. 또 술을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는 등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데 이때도 안드로겐 생성이 촉진돼 여드름에 악영향을 미친다.

PM 10:00 지친 피부에 수분을 줄 차례다. 수분 에센스, 수분 크림을 꼼꼼히 발라 줘야지. 그런데 갑자기 솟구쳐 올라온 여드름이 보인다. 내일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는데…. 예전에 처방받았던 여드름 약을 복용하고 우울한 심정으로 잠에 들다.
advice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 수분 화장품을 발라주는 것은 도움이 된다. 특히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물을 많이 마셔 수분을 공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여드름 약 중에 ‘아이소트레티노인’이라는 비타민 A 유도체가 있다. 효과가 좋아 피부과에서 중증 여드름을 대상으로 처방하고 있지만 입술이나 구강점막 등이 건조해지고 손바닥에 각질이 일어나거나 전신 가려움증이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피부과전문의 상담과 처방을 받은 상태에서 복용하도록 한다. 특히 취침 전에 약을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은 습관이다.

PM 11:30 잠을 자면서도 여드름과의 전쟁은 계속 된다. 전투복 관리는 필수. 베개와 이불은 철저히 살균소독해서 몸에서 떨어진 각질로 인한 2차 오염을 막는다.
advice 베개와 이불 등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습관이다. 수시로 베개를 세탁하고 햇볕에 말리는 것이 좋다. 힘들다면 베개에 수건을 깔고 자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자는 습관은 삼간다.

장치선 객원기자 charity19@joins.com
도움말_이유득(강남 이지함 피부과 원장)
사진자료_이지함 피부과, 이형기(nowhere.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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