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아파트 기나긴 고통-신도시 날림공사 5만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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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내집마련의 기쁨을 안고 92년11월 서울강남구도곡동 현대아파트(32평형)에 입주한 朴모씨(40.회사원)는 이사첫날 집안 벽마다 거북 등처럼 갈라진 균열을 발견하고 기가 막혔다.
朴씨의 실망은 그러나 시작에 불과했다.불량 난방시공에다 온도조절기마저 제대로 작동되지않아 朴씨 가족은 그해 겨울을 추위에떨어야 했다.지난해 2월 추위가 풀리자 방 벽은 습기때문에 온통 곰팡이로 뒤덮였다.
시공회사측에 줄기차게 항의.진정한 끝에 난방장치는 1년만인 지난해11월에야 고쳐졌다.그런데 이번에는 현관문 윗부분 벽이 내려앉아 문이 닫히지 않았다.올 2월에는 안방문도 윗부분이 내려앉았다.시공회사측은 진정이 있을 때마다 대패로 문을 깎아내지만 현관문의「이상」은 여전하고 안방문도 여닫을 때면『끽끽』소리가 나기는 마찬가지다.
朴씨는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13개월간 관할 강남구청 주택과.현대산업개발 본사와 주택조합장등에게 20여통의 진정서류를보냈다.그때마다 땜질식의 보수뿐 근본적인 수리는 1년6개월이 지난 지금도「감감 무소식」이다.웬만하면 자비로 보수를 하고싶지만 보수센터에 견적을 떼보니 최소 6백만원이나 든다는 말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아파트부실공사와 하자보수 지연으로 인해 朴씨가족이 겪는 이같은 고통과 피해는 그러나 전국 아파트 입주자들이 겪는 사례중의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경기도 안양시동안구평안동 평촌신도시 초원마을 부영아파트 1천7백여가구 주민들도 1년7개월째에 접어드는 부실공사와의「전쟁」에 지칠대로 지쳐 있다.복도식인 이 아파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면 15층 전체의 통로벽에 1~2m간격으로 흰색 실줄 10여개씩이 무늬처럼 새겨 있다.
건설회사측이 갈라진 벽을 접착성 페인트로 땜질해 둔 흔적이다. 708동 509호 尹모씨(49.여)의 집 문짝은 뒤틀려 닫히질 않고 새아파트인데도 수도꼭지를 낡은걸 설치해 녹물이 섞여나온다.신도시의 경우 경기도가 92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22개월간 접수한 하자발생 건수는 7만여가구로부터 무려 5만2천여건. 평촌 부영아파트 주민들은 92년10월 입주후 곧바로 나타난 부실공사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지난해 10월 13개 동 대표들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안양시도 중재에 나섰지만 하자보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시공회사측은『하자가 발생하는대로 무기한 고쳐주겠다』지만 주민들은『시공회사의 하자보수는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는 주장이고 이때문에 주민 8백여명은 3월29일 시공회사앞에 몰려가 집단 항의시위를 벌였고 3일에도 2차 항의 집회를 가질 예정으로 관할 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해놓은 상태다.정부는 건설회사들에 철저한 하자보수를 지시하고 건설회사들도 올해를「부실공사 추방 원년의 해」로 지정했지만 입주민들에게는「사후약방문」에 눈가림식이다. 문제가 생기면 시공회사들은 입주후 1~2년동안 본사나 용역업체를 선정,하자보수를 해주지만 일부아파트는 하도급업체에 떠맡겨 장기 민원이 되기도 한다.
또 보수에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까지 추가부담을 하게돼 사회적으로 천문학적인 낭비가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사회의 만성고질병이 돼버린 아파트부실공사는 과연 막을길이없는 것일까.
〈金東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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