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IMF·세계은행·WTO의 숨겨진 음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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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불경한 삼위일체

리처드 피트 외 지음
박형준 외 옮김
삼인, 500쪽, 1만8000원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인들에게 이미지가 좋지 않다. 외환위기의 추억 때문이다. IMF를 위기 때 나타난 ‘구세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 때문에 고통만 더 커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당시 한국의 위기는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이었다. 그렇다면 IMF는 단기대출을 통한 유동성 조절만 하면 됐다. 이게 이들의 원래 설립목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참 더 나아갔다. ‘개혁’이란 이름 아래 구조조정과 긴축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은 양산됐으며, 알짜 기업과 부동산들이 줄줄이 외국 기업에 헐값으로 매각됐다.

  이런 경험이 생생히 남아있는 한국인들에게 이 책의 주장은 낯설지 않을 것 같다. ‘IMF·세계은행·WTO는 세계를 어떻게 망쳐왔나’라는 부제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세 국제기구가 한 몸이 돼(삼위일체) 불경스럽게도 세계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정책으로 인해 영양 부족과 빈곤, 실업이 만연해졌고 매일 어린이들 수천 명이 사소한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들이)평등하고 형평성 있는 세계화를 추구하는 대리자로 행동하기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부자들만 배려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피해만 주고 있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하면 되지 않는가. 지은이들은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들 뒤에는 이른바 ‘워싱턴-월스트리트 동맹’이 있기 때문이다. 즉 미 재무부와 하버드 대학, 월스트리트 저널이 있고 궁극적으로는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이 있다. 외국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방까지 점령하겠다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이들의 궁극적인 지향인데 포기할 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좋다.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만든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so what)”에 대해선 별 말이 없다. 기껏해야 “사회운동단체와 노조가 중심이 되고 학생과 환경운동단체 등이 합세해 대항 헤게모니를 만들자”는 정도다. 이런 류의 책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한계다.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현실은 현실이고, 제도는 제도일 뿐이라는 무력감이 또다시 감도는 것 같아 내내 씁쓸하기만 하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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