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좋은 공연예술 작품을 한꺼번에 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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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21면

국내외 좋은 공연예술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큰 축제. 16개국의 작품들이 서울에 모인다. 각기 다른 나라의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지닌 그들이 무대 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그 이야기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장르로 나누자면 공연들은 크게 연극·무용·음악극으로 구분되는데 연극 프로그램이 단연 강세다. 총 38개, 워낙 많은 숫자의 작품이 있기 때문에 선택하기 쉽지 않다. ‘고도를 기다리며’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익숙한 작품도 몇몇 있지만 낯선 현대극과 현대무용은 단체의 유명도에만 집착하기보다 작품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 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판단해 보시기를 권한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홈페이지(www.spaf21.com) 참조.
*올해 페스티벌의 대표작이자,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으로 두 공연을 소개한다.

롱 라이프(Long Life)

9월 26(수)~28일(금) 오후 8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
국가: 라트비아, 작·연출: 알비스 헤르마니스

무의탁 노인들이 거주하는 공동주택, 다섯 명의 할아버지·할머니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정말 쉽게 만나기 힘든 독특하고 ‘느린’ 연극이다. 거기다 무대 위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코 고는 소리, 거동 불편한 노인이 내는 끄응 하는 신음 소리 정도뿐이다. 뭔가 석연치 않으신지? 그러나 장담하건대 무대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놀라움에 벌어진 입은 약 100분간의 공연 시간 내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각종 일상적인 소품들로 빼곡히 채워진 무대는 라트비아의 노인 공동주택을 그대로 들어다 옮겨놓은 듯하다. 멋진 대사나 조명·음향 등 극적인 효과 하나 없이 인간과 사물의 존재함,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 연극은 가슴 저릿하게 시적이고 아름다운 감흥을 준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이 시대에 연극만이 사람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는 유일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연출가 헤르마니스는 말했다고 한다. ‘롱 라이프(Long Life)’는 연극의 본질과 삶의 고귀함에 대해 밑바닥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웨이팅 룸(Waiting Room)

9월 28(금)~30(일) 평일 오후 8시, 토·일요일 오후 4시, 남산 드라마센터
국가: 체코, 작·연출: 빌리암 도촐로만스키

2006년 의정부 음악극축제에 ‘다크 러브 소네트’라는 작품으로 내한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는 ‘팜 인 더 케이브’. 무대는 슬로바키아의 어느 외딴 역 대합실. 1930년대 자신의 나라에서 추방당했던 슬로바키아 유대인들에 대해, 그들이 겪은 상처와 아픔이 어떤 것이었는지 무대 위에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대사가 없다. 몸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아, 이거 모호한 움직임 앞에서 도대체 뭐라는 거지…’ 하는 난감한 1시간을 보내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도촐로만스키는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명징하게 구성해 내는 능력을 보여 준다. 움직임과 이미지의 단순 나열이 아니라 이것들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입체적인 모습으로 엮고 쌓아 내는 것이다. ‘팜 인 더 케이브’의 배우들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움직인다. 그들의 자신 있고 에너지 넘치는 몸은 언어보다 훨씬 깊고 많은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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