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900여 명 '역시(歷試)' 단체로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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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직원 1900여 명이 13일 치러지는 '역시(歷試.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단체로 응시한다. '역시'는 한국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고 본사가 후원하는 시험이다. 지난해 11월과 올 5월 일반인을 상대로 1, 2차 역시를 치른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번 시험을 롯데백화점 직원만을 위한 특별시험으로 마련했다.

백화점 전 직원(4500여 명)의 43%가 응시해 전국 10개 도시 11개 고사장에서 객관식과 서술형 50문항을 풀게 된다. 응시료는 백화점이 전액 지원한다.

롯데백화점 직원들이 단체로 역시에 응시한 것은 국사 지식을 승진 필수 요건으로 삼는 이 회사의 인사 제도 때문. 롯데백화점에서는 부장.차장.과장 진급 희망자는 대학 교양과목 수준인 2급, 계장.주임 진급 희망자는 고교 국사 수준인 3급에 합격해야 한다.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우리 기업 경영 현실에서 보기 드물게 롯데백화점이 이런 제도를 마련한 것은 이 백화점 이철우(64.사진) 사장의 독특한 경영관 때문이다. 이 사장의 '역사 사랑'은 유통업계에선 유명하다.

올 2월 롯데마트에서 롯데백화점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긴 이 사장은 롯데마트 사장 시절인 2005년에 간부사원 승진 인사에 국사 과목을 넣었다. 또 전국 롯데마트 매장 앞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했다.

이 사장은 롯데백화점 사장으로 부임한 첫날 조례에서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에게 한국 상업사를 정리한 '한국상인-연타발에서 개성상인으로'(공착석 저, 박영사 간)라는 책을 완독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은 한자능력시험 급수 보유자에게도 승진 가산점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이 사장의 방침은 '자기 문화와 역사에 정통한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는 지론 때문이다. 이 사장은 "우선 우리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상대방을 알게 되고, 이것이 호혜와 평등의 사상을 심어주는 출발점"이라며 "글로벌화라는 것은 외국어 잘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상대가 똑같이 소중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장 자신도 틈틈이 역사책을 읽는 것이 취미다.

이현상 기자

◆이철우 사장=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 회장비서실에서 근무하다 1973년 롯데쇼핑에 입사했다. 온화한 인품의 '덕장' 스타일이지만, 보수적인 롯데 기업문화에서 보기 드물게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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