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살리기 “마지막 카드”/법정관리 신청 배경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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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빚1조2천억… 자금지원 “밑빠진 독”/「기업만은 구제」… 새 정부 의지 반영
법정관리에 의한 한양사태해결 모색은 쓰러뜨리기에는 경제·사회적으로 파장이 너무 크고 계속 자금을 대주자니 회생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카드다.
부실기업 한양처리방식의 특징은 주거래은행으로서 86년말부터 관리단을 파견해 온 상업은행측에서 스스로 큰 손실을 감수하며 사실상 한양으로 하여금 법정관리를 신청토록 했다는 점이다. 또 배종렬회장 등 실질적인 주인이나 현재의 경영진으로 하여금 한양에서 완전히 손을 떼도록 한다는 점이다.
재계는 부실시공 등 기업윤리상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은 살리되 기업주를 그 기업에서 떼어낸다는 새 정부의 대기업관을 엿보게 하는 한 단면으로 주목하고 있다.
한양이 스스로 서기 어렵다고 본 상업은행은 일정기간동안 채권·채무를 동결해줌으로써 회사로 하여금 갱생의 길을 걷도록 하자는 게 근본취지인 법정관리를 채권·채무를 동결하는 한 수단으로서만 이용하고 빠른 시일안에 제3자 인수를 시킴으로써 털어버리자는 구상을 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에서도 지금까지 건설회사에 대해서는 부채가 많아 여간해서 법정관리를 받아주지 않아왔는데 이번 경우는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거리다.
어쨌든 현 상황으로 볼 때 한양은 주공에서 인수하는 쪽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높다. 건설부는 이와관련 주공이 정관상 자회사를 둘 수 있으며 실제로 한성슬라브라는 자회사를 둔 적이 있다며 법적인 검토를 끝냈다고 밝혔다.
건설부관계자는 『5·6공때처럼 부실기업을 특정기업에 떠넘길 경우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특혜의혹을 없애기 위해 정부투자기관에서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건설부는 또 주공에서 한양을 인수하더라도 전문경영인을 두고 관리감독만 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양의 배 회장도 법정관리에 동의했으며 경영은 주태건설 전문업체에 맡겼으면 좋겠다며 주공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조2천억원에 이르는 은행 빚더미를 안고 있는 부실회사를 국민세금으로 운영하는 정부투자기관에서 인수하는 게 과연 합당하냐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한양이 법정관리를 신청함에 따라 상업은행을 포함한 거래은행은 이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채권회수가 불가능하게 된다. 거래업체(5천여개)·근로자(2만여명)·소액주주(1만3천8백여명,전체 주식의 57.1%인 4백79만7천주 보유) 및 입주자도 적지않은 피해를 보게 된다.
73년 한양주택개발로 출발한 한양은 국내 주택건설과 중동붐을 타고 급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해외건설경기의 퇴조로 타격을 입어 86년산업합리화 업체로 지정됐으며,6공들어 주택2백만호 건설에 힘입어 다시 일어서는 듯했으나 아파트 부실시공과 노사분규로 결국 주저앉았다.
주인이 직접 뛰면서 결정할 일이 많다는 건설업계에서 배종렬회장(55)은 수완이 뛰어난 경영자로 알려져 있으나 동시에 그만큼 정치권과 밀착돼 문제를 일으켰던 「로비의 귀재」로 인식된 인물이기도 하다. 5공시절 전경환씨 등 5공실세들과의 친분관계로 우장산근린공원 조성공사,평택LNG인수기지 건설공사,특수군사시설공사 등 굵직한 사업을 따냈다. 6공들어 5공비리가 문제되면서 배 회장은 전씨와 염보현 전서울시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민자당 가락동연수원 부지를 매입하고 천안교육원공사 수의계약을 맺음으로써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과 함께 대선을 앞두고 정치쟁점이 되기도 했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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