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재치문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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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요즈음은 아홉살짜리 아들녀석과 재치문답하는 재미에 살맛이 난다. 문자 그대로 재치를 테스트하는 일종의 게임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좋고 전화 한통화만으로도 간단히 부자지간의 정을 나눌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아전인수 같지만 아이의 머리가 좋아지는 듯한 생각까지 들게되니 일종의 보람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재치를 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작은 것 한가지씩이라도 그날그날 깨우쳐 가는 느낌을 받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게임은 언제나 우문으로 시작하여 현답이 나올 때야 끝이 난다.
『준수야, 너 오늘 학교갈 때 뒷문으로 가거라.』
『싫어요. 정문으로 갈래요.』
『늦었는데 오늘은 뒷문으로 한 번 가보지 그러니.』일부러 능청을 떨어 본다.
『안돼요. 뒷문으로 다녀 버릇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떳떳한 일을 할 수 없다면서요.』『…….』
흐믓한 대답이 나와주니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따위의 재치문답식 대화는 아이와의 사이에 가로막혀있는 벽을 허무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같다. 곤충이나 동물, 인생의 이런저런 이야기, 아버지도 너만했을때는 공부하는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깡통으로 바람개비 만드는 이야기 등등….
누구나 어렸을 때는 그렇겠지만, 아이들은 역시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원래 장난은 사람의 집중력을 강하게 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장난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하나씩 의미있는 문제를 풀어가는 것도 젊은 아빠의 살맛이라고나 할까. 이런 류의 재치문답은 그림으로 풀어봐도 좋고 글로 문장을 써가며 풀어봐도 좋은 것같다.
삼각형을 그려놓고 『너 이걸로 무얼 만들 수 있니』, 사각형을 그려놓고 『너 이걸로 무얼 만들 수 있니.』 무엇이든 그려보게 하고 말을 시켜본다. 대답이 아무래도 좋다. 그저 아이가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그려가면서 설명하며 나를 감동시키려고 하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꼬집어주고 싶게 이쁘다. 둘만이 할 수 있는 인생공부시간. 요즘에야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된 것 같다. 그래서 훨씬 가까워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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