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이후 시국사건 변론 앞장/민권변호사 황인철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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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YH·부천서 성고문 등 빠짐없이 참여/90년엔 투병중에도 「방북」사건 매달려
70년대 이후 민주화투쟁과정에서 일어난 각종 시국사건의 변론을 통해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명성을 떨쳐온 황인철변호사가 2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지병인 직장암으로 별세했다. 53세.
충남 대덕출신인 황 변호사는 서울대법대를 졸업하고 고시 13회로 임관,서울 형사·민사지법 판사를 거쳐 70년 변호사 개업후 74년 민청학련사건을 계기로 인권변론의 길에 뛰어들었다. 그는 70년대에 발생한 지학순주교사건,김지하반공법위반사건,3·1구국선언사건,한승헌변호사 필화사건,동아·조선투위사건,함평고구마사건,청계피복노조사건,동일방직·원풍모방사건,이영희·백낙청교수 반공법위반사건,YH사건 등 주요시국사건의 변론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차례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고 80년 8월에는 계엄사합수부에 의해 보안사에 연행돼 휴업을 강요당하는 등 숱한 고난과 시련을 겪었으나 정의와 인권실현에 대한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다.
80년대 이후에도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삼민투사건,건국대사건,민중교육사건,보도지침사건,대우자동차사건,부천서성고문사건,박종철군 손해배상청구소송 변론에 앞장서는 등 각종 시국사건 현장의 증인이었다. 90년초 이래 세차례에 걸쳐 직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중 엄청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임수경양·문규현신부 방북사건의 변론에 끝까지 매달리는 초인적인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그는 천주교정의평화위원을 맡았고 88년 5월 민변창립을 주도해 2대 대표간사,경실련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최영희여사와 2남2녀.
영결미사는 22일 오전 9시 명동성당.(596)4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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