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변덕스런 시청자 시선 묶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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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리모컨이 보급된 이후 TV시청자가 시시각각 채널을 바꾸는 요즘엔「30초에 승부를 걸라」는 말도 옛날얘기로 통하는 곳이 바로 광고계다.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시청자를 사로잡아야하는 임무를 띠고 늘 고도의 긴장 속에서 일하는 CF감독 임인규씨(44·「광고방」프로덕션 대표)는 그야말로 0.1초에 승부를 걸고 뛰는 사람이다.
설정된 아이디어와 표현전략에 들어맞는 광고를 연출해내기 위해서는 세트 디자인은 물론 모델의 의상·액세서리·메이크업까지 세밀하게 관리해야하는 것이 CF감독의 몫. 각 분야를 담당하는 전문 스태프가 있지만 CF감독은 마치 오키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이들 각 분야의 전체적인 조화를 이끌어내 소비자인 시청자에게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임씨는『CF감독은 무엇보다도 뭔가 다른 것, 또 시대를 앞서가는 것을 감지하는 촉각이 발달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아이디어는 물론 오디오와 비디오를 다룰 줄 아는 능력도 있어야 하고 사람과 시간·돈까지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탤런트 김혜자씨가 출연한 세제광고, 빈 소년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피아노 광고, 훈훈하고 부드러운 부부애를 강조한 프리마 광고 등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광고들 중에는 임씨가 제작한 광고가 적지 않다. 광고계에서는 그의 광고에 대해『스피디하진 않지만 시청자에게 깊숙이 파고드는 광고』라며 『감각을 압도하는 연륜으로 플러스 알파를 창조하는 감독』이라고 평가한다.
임씨는『광고는 시청자가 무심코 보아 넘기는 사소한 부분까지 세밀한 계획아래 제작해야한다』며 『CF감독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재 제작』이라고 말한다. 가끔 아주 사소한 것을 이유로 재제작되곤 하는데 이때 드는 비용과 심리적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하지만 즉각 결과가 드러나는 일의 성격만큼 성공했을 때의 보람도 크다』고 그는 말한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제일기획·세종문화 등을 거쳐 89년「광고방」으로 독립한 그는 90년 칸광고제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동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89년 임씨가「광고방」을 차릴 때만 해도 그때 이미 역사나 자본면에 있어서 튼튼한 프러덕션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광고방」의 성공을 선뜻 장담하지 못했지만 지덕엽(36)·김종원(35)·김동원(31)등 패기 있고 유능한 3명의 감독과 더불어 임씨는 광고방을 3년만에 현재 60개에 달하는 국내 프러덕션들 중 제작편수·매출에 있어 2, 3위를 다투는 막강한 팀으로 키웠다. 임씨는 『광고의 매력이 크긴 하지만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섣불리 뛰어드는 후배들이 염려된다』며 『광고인이 살아남는 방법은 끊임없는 자기개발뿐』이라고 충고했다. <이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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