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갈등·권력투쟁 겹쳐 혼미/끝없는 러 보혁대결 원인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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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옐친의 의회약화 기도가 새불씨/혼란우려 개혁 부분수정 가능성
러시아 정부와 최고회의(의회)간 보혁대결이 연일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번 대결은 경제개혁을 둘러싼 그동안의 갈등에다 체제개편에 대비한 권력투쟁까지 맞물려 있어 협상에 의한 타결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개혁파주도의 정부는 지난 70년대 중반을 고비로 내리막길을 걸어온 경제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활력있는」서구식 시장경제체제를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한다는 판단아래 올해들어 급진개혁조치를 잇따라 취해왔다.
▲생산의욕 고취를 위한 가격자유화 등 충격요법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군수산업의 민수전환 등을 통한 산업구조조정 ▲루블화안정과 인플레 방지를 위한 정부보조금 삭감 등 긴축재정을 골자로 하는 급진개혁은 그러나 ▲평균 10배이상의 물가폭등과 20% 가까운 생산감소 ▲보조금삭감으로 인한 파산기업 속출과 1천%를 넘어선 인플레 등 경제파탄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같은 현상은 최고회의가 당초 급진개혁을 반대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우려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어서 9월22일 개막된 최고회의를 통해 파상적인 대정부공세를 펼치는 결정적 빌미가 됐다. 최고회의는 기초생필품에 대해서는 구소련체제하에서와 마찬가지로 낮은 고정가격제를 유지함으로써 생필품구입난을 줄이고 군수산업을 비롯한 대기업을 종전대로 육성,러시아의 특화산업으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쳐왔었다.
경제개혁을 둘러싼 정부와 최고회의의 대립을 더욱 격하시킨 것이 옐친대통령의 체제개편 방침이다. 옐친대통령은 최고회의와 그 모체인 인민대표대회(헌법개폐 등 중대사안을 결정하는 비상설 최고정책결정기구로 산하에 최고회의를 상설기구로 두고 있다)를 개혁방해세력으로 규정,두 기구를 약화시키고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체제개편을 서둘러왔다.
더욱이 옐친대통령은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를 상정하고 있는 정부측 신헌법초안이 지난 4월에 이어 오는 12월의 인민대표대회에서 또다시 부결될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아예 인민대를 피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신헌법을 채택한다는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곧 두 기구의 해산과 조기총선을 의미하기 때문에 최고회의는 지난 21일 옐친대통령의 인민대연기요청을 거부하고 오는 12월1일 예정대로 인민대를 열어 현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인민대 개막일은 지난해말 구소련 해체와중에서 옐친대통령에게 부여된 비상대권이 만료되는 시점이어서 입법부가 제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최고회의가 이처럼 보수세력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최고회의를 선출하는 인민대선거가 구공산당 일당체제하인 지난 90년 3월 실시돼 당추천후보들이 대거 당선됐기 때문이다. 당추천후보 1명과 자유출마자들이 맞붙는 제한경선방식으로 치러진 당시 인민대선거에서 상당수 개혁파후보들이 당선되기는 했으나 대세를 뒤집는데는 실패,그에 따른 세력판도가 아직까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최고회의가 자체분석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최고회의 및 인민대 대의원들중 정부의 급진개혁에 대한 찬성파는 1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40% 내외의 가장 안정된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는 중도파는 개혁자체에는 찬성하나 급진개혁에는 반대하고 있어 현재의 보혁대결구도로 볼때 범보수파로 분류될 수 있다.
따라서 옐친대통령으로서는 최근 보여온 일련의 초강경대응을 계속함으로써 보수세력과 최후의 한판승부를 벌이든지,보수세력의 압력에 굴복해 타협하든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여있다.
옐친대통령이 끝까지 실력대결을 고집할 경우 1917년 볼셰비키혁명 직후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이 벌였던 내전을 방불케 하는 대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는데다 개헌국민투표 등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결국 보수세력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예고르 가이다르 총리서리를 비롯한 몇몇 각료를 경질하고 개혁노선을 부분수정하는 선에서 타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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