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종교개혁」 필요하다/서광선(종교인 시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517년 10월 마지막날,독일의 시골대학 강당 대문짝에 커다란 글씨로 쓴 대자보가 붙었다. 운동권 학생들이 만들어낸 대자보가 아니라 그 대학의 젊은 교수가 손수 쓴 신학적 질의서였다.
대자보의 내용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가톨릭교회를 향해 던진 비판적 질문들이었다. 기독교의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인가,아니면 면죄부를 비싸게 사 헌금통에 넣기만 하면 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인가. 성당을 높고 웅장하게 짓는 일이 무엇보다도 먼저 종교가 해야할 일인가. 마르틴 루터라고 하는 이름없는 젊은 신학교수의 대자보는 당시의 온 유럽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퇴색한 루터 개혁정신
이것이 이른바 그 유명한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루터교수는 당장 로마교황청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받아 파문당하고 신부의 직함도 박탈당하고 만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기독교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을 외치면서 기독교 세계에 새로운 역사를 전개시켜 나갔다.
그의 개혁사상의 핵심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기독교신앙의 최종적 권위는 교회나 교황청이나 신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있다는 것이다. 성서에 써있는 글자에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를 읽는 사람의 양심에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성서를 읽는 사람은 자기 양심에 따라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기는 것이다. 「성서 제일주의 원칙」은 당시 유럽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먼저 일반대중이 성서를 직접 자기말로 읽을 수 있게 라틴어를 번역,대량 인쇄하게 됐다. 루터 자신도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당시 새롭게 발명된 인쇄기술이 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학자들은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학문적 자유가 주어졌다.
○물신주의에 빠진 교회
루터의 개혁사상의 두번째 핵심은 성서를 직접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기독교의 신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부를 통해서나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양심으로 성서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을 「만인사제론」이라 하지만 이 원칙은 기독교인들의 평등사상을 고취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성직자나 이른바 평신도는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이다.
그리고 이 기독교적 평등사상은 사회의 정치적·법적 평등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중세시대 교회의 권력행사에 대한 비판적 정치사상으로 발전되었고,이른바 교권주의,혹은 교회의 권위주의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 되었던 것이다.
소위 「휴거소동」이후 한국의 기독교는 교회의 안과 밖에서 개혁의 요구를 많이 듣고 있다. 그 첫째는 한국의 기독교는 돈을 섬기는 물신주의에 빠져 높고 크고 웅장한 교회건물을 짓고 수천명의 교인을 모이게 하는데만 정신을 쏟고,가난한 이웃과 부패하는 사회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성서를 옳게 읽고 스스로의 삶을 뜻있고 보람있는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길잡이가 되기는 커녕,오히려 사회 부조리와 부패를 부추기는 사회악의 온상으로 타락하고 있다는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다.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 받아 「개혁교회」라고 자처하는 개신교들은 스스로의 개혁정신을 저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학문의 자유를 쟁취하는데 앞장섰던 개신교회가 우리나라에서는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신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발전을 위축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신학대의 학장을 해임하고 교수들을 목사직에서 출교시키는 일은 학문의 자유를 압살시키던 중세교회의 한 행태이며 독재 공산정부와 군사정권이 하던 행태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권위주의도 반성해야
한국의 개신교회들은 「종교개혁주일」을 기념하면서 교회의 권위주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75%이상이 여성교인인데도 불구하고 1백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 대부분이 여성목사나 여성교회지도자를 거부하는 것은 가부장적 남성권위주의를 그대로 보수하겠다는 생각이다.
한국교회 안에 팽배해 있는 반지성적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바로 제2의 종교개혁을 이루는 것이고 종교개혁 정신에 입각,기독교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이화여대 대학원장·목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