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동 박지성'135㎝ 김형태군 '사랑의 파도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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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명한의원 김효준 원장이 김형태군의 맥을 짚어보고 있다(上). 포천 김희태축구센터에서 김형태군이 산토스 코치 앞에서 드리블을 하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포천=김상선 기자]


# 1. '시흥동 박지성' 뜨다

'김형태(13)는 발군의 드리블러다. 서너 명을 질풍같이 제치며 상대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만들었다. 체격은 작지만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휘젓는 박지성을 빼닮았다. 형태는 부모가 이혼한 후 다섯 살부터 보육원에서 생활해 왔다. 언제부턴가 키는 자라지 않았고,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임에도 1m35㎝의 키는 초등학생으로 보이게 한다. 운동엔 만능인 형태의 꿈은 축구가 아닌 태권도나 기계체조 선수다. 작은 키 때문에 축구선수는 꿈꿀 수 없다'. 30㎝만 더 크면 축구선수가 될 수 있을 텐데…. 형태의 아쉬움이다'. <본지 1월 30일자 25면>

서울 혜명보육원의 '시흥동 박지성' 김형태는 1월 '작은 천사 큰 희망 어린이 축구대회'를 보도한 중앙일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 2. "꿈을 가져"

기사를 보고 연락해온 사람은 임흥세씨였다. 성수중 감독 시절 김주성을, 광희중 감독 시절 홍명보를 키워낸 그는 "형태를 돕고 싶다"며 새생명한의원 김효준 원장을 소개했다. 한방성장학회 부회장인 김 원장은 형편이 어려운 축구 꿈나무 5명을 무료로 진료하면서 영양제도 제공하고 있다.

4월 10일, 형태가 서울 삼성동의 김 원장 병원에서 혈액.소변.영양 검사를 했다. 혹시 '왜소증'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김 원장은 "아직 2차 성징이 오지 않아 키가 더 클 수 있다. 그동안 영양 공급이 워낙 불균형했고, 운동을 지나치게 많이 해 자라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김 원장은 "한약과 영양제를 꾸준히 먹고, 생활습관을 바꾸면 1m60㎝ 이상은 충분히 클 수 있다"며 네 종류의 약과 영양제를 처방해 줬다. 그리고 형태를 꼭 끌어안았다. "형태야, 꿈을 크게 가져."

# 3. "이놈 봐라, 재능 있네"

임흥세씨는 포천 김희태축구센터의 오세권 총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테스트를 해 보고, 장래성이 있으면 축구센터에서 키워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5월 29일, 형태가 김희태축구센터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초등부 감독인 이두철(박지성의 수원공고 시절 코치)씨가 리프팅과 드리블 등을 시켰다. 브라질 코치 산토스가 고난도 속임 동작을 하자 형태는 금세 따라했다. 미니게임 도중 코너킥이 날아오자 형태가 잽싸게 몸을 날려 발리슛을 했다. 볼은 수비수의 몸에 맞았고, 그 아이는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태권도 3단인 형태는 지난해 전국대회 미니핀급(23~25㎏)에서 우승한 강자다. 이 감독은 "축구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데도 감각이 뛰어나다. 제대로 키우면 대성할 선수"라고 말했다. 산토스도 "킥이 좋고, 연습보다 실전에 더 강하다"며 엄지를 세워보였다. 1차 테스트는 통과.

# 4. 희망을 향해 가자

명지대 감독 시절 박지성을 키웠던 김희태 이사장이 형태에게 인사이드 패스와 드리블을 시켜봤다. 최종 테스트인 셈이었다. 김 이사장은 "순발력이 좋아 발전 가능성이 있다"며 합격점을 줬다.

형태가 돌아간 뒤 김 이사장이 말했다.

"내가 한번 키워보고 싶긴 한데, 우리도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회비를 전액 면제해 줄 수는 없고,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친다면 자신도 돕겠다고 했다. 임씨와 김 원장이 "우리가 힘을 모으면 형태 한 명 못 키우겠느냐"며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사랑의 파도를 타고 시흥동에서 포천까지 온 형태의 꿈★은 이뤄질 것인가.

포천=정영재 기자, 이충형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포천=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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