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전문 감독 제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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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영화제작과정에 분야별로 전문 감독 제를 도입한 영화가 만들어져 영화계가 성공 여부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최민수·심혜진이 주연하고 신인 김의석 감독이 연출한 『결혼이야기』는 「기획은 길게, 촬영은 짧게」라는 대 원칙 아래 분야별 전문 감독 제를 도입한 첫 영화로 평가된다. 우리 영화계의 고질병인 주먹구구식 제작을 탈피하고 「영화제작의 과학화」를 기하자는 의도로 『결혼이야기』는 영화 선진국에선 이미 일반화된 자본·제작, 그리고 제작분야별 독립 책임 제를 시도했다.
즉 제작자는 돈·배급만을 책임지고 실제 제작은 전문 프로듀서가 진행하며 연출자와 등가로 촬영감독·미술감독·캐스팅감독을 기용, 영화의 완성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결혼이야기』는 이에 따라 젊은 전문 기획 그룹인 「신씨네」가 20여 차례 시나리오를 수집한 다음 제작비·배급을 피카디리 극장에 맡기고 제작진행자·감독을 선정, 촬영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선정된 여성프로듀서 오정완씨는 감독과 협의, 시각디자인 감독으로 영국 템즈 TV드라마 코디네이터로 활약한 김철웅씨를 발굴해 콘티를 짠 다음 보통 30회 이상 걸리는 촬영 횟수를 23회만에 끝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예산 낭비를 최소화한다는 경제적 이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작도중에 우왕좌왕하다 작품의 통일성을 잃어버려 결국 질이나 재미를 떨어뜨리는 그 동안의 과오를 씻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누차 한국 영화계가 도입해야 할 것으로 강조돼 왔었다.
『결혼이야기』는 결혼, 특히 신혼에 대한 환상·편견, 그리고 갈등을 통한 이해를 경쾌하게 그린 영화다.
다소 진부한 주제의 영화인데 시사회장을 찾은 평자들은 종합 기획 시스템에 힘입어 특히 빠른 연출 템포, 시각디자인의 조화 덕으로 수 차례 영화화된 같은 주제의 영화를 완전히 새로운 영화로 보이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평자들은 이 성공은 첫 시도를 감안해 내린 평점이며 전체적인 톤의 강약 조절문제와 가장 중요한 메시지 전달 구성능력의 부실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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