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선박 엔진 국산화의 주역|주물기술자 김삼남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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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쓸모 없는 고철을 녹여 대형 선박을 움직이는 엔진을 만드는 일에 긍지와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59년 주물분야에 투신, 30여 년만에 이 분야 최고의 기능인이 된 김삼남 명장(49· 경남울산시전하2동672의22).
국내 최대의 조선소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주조공장의 터줏대감인 김씨가 하는 일은 2만∼30만t급 대형선박을 움직이는 3백t규모의 선박용 디젤엔진을 만들기 위해 엔진실린더 모양의 틀에 벌겋게 용해된 쇳물을 집어넣는 작업이다.
「선박엔진 국산화의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한국 선박엔진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김씨가 주물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기술을 배워 가난을 탈피하고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경북 상주의 함창 대동철공소, 서울 봉신주작소 , 부산 주공주식회사 등에서 공작기계 등의 주물을 담당했던 김씨는 섭씨 1천5백도로 끓는 쇳물을 틀에 부으면 갖가지 모양이 되어 나오는「예술적 매력」 에 끌려 일생을 바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78년 「더 큰 곳에서 보다 많이 배우고 도전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에 조선소 엔진공장이 생기는 것과 때를 같이해 이곳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맨 처음 이곳에 들어가 일본에서 수입한 3층 짜리 집채만한 엔진을 보고는 기가 질렸던 일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초기에는 수입품을 쓰거나 외국인 기술자의지도를 받아 엔진을 만들었는데 선주가 와서보고 십중팔구 퇴짜를 놓는 바람에 엔진국산화 집념을 불태우게 됐다는 것.
『불합격 판정을 받을 때 생기는 좌절감과 회의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는 그는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게 됐고 이를 발전의 모태로 삼아 자력으로 국산엔진을 만들어나갔다.
그는 「무결함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피나는 반복 작업을 계속했고 외국인 기술자에게 지도를 받은 후 동료들과 밤을 지새며 토론을 벌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노력으로 78년 말 선박 엔진의 국산화가 가능해졌고 이어 85년에는 일본에서 수입사용 하던 대형 선박용 프로펠러도 국산화가 이루어져 원가는 물론 외화 절감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것이 바탕이 돼 현대가 세계굴지의 선박용 대형 프로펠러 공장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또 기술습득을 위한 프랑스 연수후 원자력발전소용 9, 10호기 비상 발전기틀 국내처음으로 제작하는 등 국내 주물 기술개발에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
그는 주물과정에서 공기가 새어 들어가 기포가 발생해 엔진몸체가 부실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 높은 쇳물 온도에 자칫 주형 틀이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국최고 수준에 오른 지금도 신입기능공과 같은 자세로 일하고 있다.
『그 동안 개인적으로 주물공장을 차려 사장소리를 듣는 친구들이 부러운 적도 있었으나 기술인 평생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산업명장」으로 인정받고 보니 쌓인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듯하다』고 그는 환하게 웃는다.
김씨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영예도, 세 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는 경제력도 덩달아 생기더라』며 철새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후배 기능인력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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