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마약중독자 자유지대”(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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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마약공원 문닫는다/3년전개장… 하루 천여명 북적/환자 증가억제 효과 없자 폐쇄
세계 마약중독자들의 유일한 치외법권지대로 널리 알려진 스위스 취리히의 플라츠 슈피츠 「마약공원」이 개장 3년만에 문을 닫는다.
지구상 단 하나뿐인 마약 자유지대로 유럽지역 마약중독자들의 성소가 돼온 플라츠 슈피츠공원 폐쇄는 3년간에 걸친 스위스식 마약 관용정책의 실패를 뜻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89년 스위스 취리히주 당국은 일정 장소에서 마약거래와 복용을 완전 자유화하는 충격적인 법률을 채택,세상을 놀라게 했다.
마약에 대해 무조건적 억압과 단속보다 제한적 허용이 사회적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취리히주당국의 입법취지였다.
그후 취리히시내 중심부에 있는 플라츠 슈피츠공원은 마약중독자들과 마약거래자들의 떳떳한 「만남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떠올랐고,그들은 이곳에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누릴 수 없는 마약사용의 보장된 자유를 만끽해왔다.
취리히중앙역에서 멀지않은 취리히 국립미술관 정원옆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공원에는 하루평균 1천여명이 몰려들어 갖가지 기기묘묘한 광경을 연출한다.
공원 한쪽에서 마약거래상들이 중독자들과 흥정을 벌이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구입한 마약을 즉석에서 주사기로 팔뚝에 주입하고 있고,공원벤치나 잔디 위에는 환각상태에 빠진 젊은이들이 멍한 표정으로 늘어져 있다.
경찰이 항상 이곳에 나와있긴 하지만 이들은 공공질서를 해치는 일이 없는한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한술 더떠 취리히시보건국직원들은 매일 이곳에 출근,필요한 사람들에게 1회용 주사기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불결한 주사바늘 사용에 의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플라츠 슈피츠공원에서 사용된 주사기만도 1천만개에 달한다는게 취리히경찰당국의 추산이다.
취리히주당국이 이번에 이 공원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곳이 완전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 죽음의 자유시장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최근 스위스의 마약중독자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져가고 있다.
취리히주당국은 1차로 지난 13일을 기해 이 공원의 야간출입금지조치를 내렸고,오는 2월말에는 이곳에서의 마약거래를 완전 금지시킬 방침이다.
그러나 지난 3년동안 실시해온 마약자유화조치를 갑자기 폐지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을 우려,기존 중독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편의시설은 제공할 계획이라고 주당국은 밝히고 있다.
즉 시내 주요약국 80여개소에 1회용주사기 자동판매기를 설치,마약중독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중독자 임시보호소를 개설한다는 것이다.
취리히주당국의 이같은 조치와 함께 스위스정부는 마약중독자에 대한 모르핀 배급제를 실험적으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도저히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중독자 50명을 선별,의사의 엄격한 처방에 따라 이들에게 모르핀을 공급하면서 그 효과를 과학적으로 관찰·분석한다는 것이다.
이 실험은 내년말까지 중독자수를 현수준에서 묶고 그후 3년간 20%를 줄인다는 대책의 일환이라고 스위스 정부당국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이 실효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3년간에 걸친 플라츠 슈피츠 마약공원의 실패경험이 이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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