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상영은 동대문 전차차고서"|김종욱씨, 비디오「한국영화70년」오류지적|"단성사극장 1907년에 설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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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텔레콤이 의욕적으로 제작하고 있는 9부작 다큐멘터리 비디오 『한국영화70년』중 제작이 끝난 제1화 일제하 초창기편의 내용중 잘못된 부분이 눈에 띄고 누락된 시기를 보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영화자료 연구가 김종욱씨는 1903년 국내에 처음으로 활동사진이 공개된 때로부터 45년 해방까지를 다룬 1부에서 우선 활동사진이 최초로 공개된 장소는 영미담배회사창고가 아니라 동대문 전차차고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비디오 내용에도 나오는 것처럼 1903년 6월23일자 황성신문에 동대문전기회사 기계창, 곧 동대문 전차차고에서 활동사진을 보여준다는 광고가 실려 있고, 영미담배회사가 을지로입구인 구리재에 설립된 해는 1906년이므로 첫 활동사진공개장소는 당연히 동대문전차차고라는 것이다.
김씨는 또 한국인 거주지역인 종로에 최초로 세워진 단성사극장의 설립연도는 1912년이 아닌 1907년이라고 주장했다.
단성사는 1907년 동대문전차차고가 본격 극장 광무대로 이름이 바뀌기 1주일전에 설립됐으며 같은 해에 원각사가 생겼고 이어 경성고등연예관(10년)·우미관(11년)이 설립됐다는 당시 기록이 있다고 했다.
단성사는 1919년 10월27일 한국최초의 영화인 연쇄극형식의 김도산연출 『의리적 구투』를 상영,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극장이다.
10월27일을 「영화의 날」로 삼은 것도 『의리적 구투』가 상영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인데 김씨는 『의리적 구투』의 촬영을 일본기사가 담당했다고 비디오에서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은 한국인기사 이필우씨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부문에서 춘사가 검열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판단, 작가의 이름을 가명으로 적어놓았다고 되어있는데 당시엔 검열제도가 없었고 『아리랑』광고를 보면 각본에 나운규라고 분명히 적혀있는 점으로 봐 춘사가 가명을 썼다는건 불확실한 해설이라고 말했다.
영화검열을 명시한 조선영화취체법은 1934년 제정됐으니 1926년에 제작된 『아리랑』이 어떻게 검열을 받았겠느냐는 것이다.
김씨는 이와 함께 보충할 부분으로는 1927∼1934년의 영화와 1936∼1939년의 영화를 들었다.
또 32년에 개봉된 이규환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는 『아리랑』에 버금가는 명작인데도 소홀히 취급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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