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7가] '공은 공, 방망이는 방망이'

중앙일보

입력

뉴욕 양키스의 살아있는 전설 요기 베라는 “야구는 90%가 멘털(Mental)”이라고 했습니다. 야구는 정신, 마음으로 하는 스포츠라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정신력, 근성에서부터 지혜, 꾀 등이 모두 멘털의 범주에 포함될 것입니다. 비단 그뿐이겠습니까?

녹색의 야구장 양쪽에 홈 플레 이트서부터 좌우측 폴까지 일직선으로 그어져 있는 백선(The White Line)은 파울과 페어 타구를 가르는 구분선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요단강 이쪽과 저쪽, 고요와 혼돈의 경계선입니다. 그 선을 넘는 순간부터 삶과 전쟁이 시작되고 죽음과 평화가 찾아옵니다. 한 뼘도 안되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비무장지대-. 그래서 지뢰밭이라도 되는 양 그 선을 밟지 않으려 훌쩍 뛰어넘는 선수들을 발견합니다. 밟으면 ×밟은 듯 재수가 없다는 징크스 탓입니다. 미신에 가까운 이 터부(Taboo) 또한 분명 멘털의 한 구석입니다.

그런 멘털의 중요성이기에 종교같은 정신적 가치를 찾는 선수들이 많아졌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처음 본, 골을 넣으면 어김없이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리던 브라질 축구 스타 자일징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서 매경기 골을 넣은 월드컵 사상 유일한 선수)의 세레머니는 이제 그 어느 운동장에서도 자주 만나는 광경입니다. 최근엔 메이저리그 축구와 야구에서 종교와 접목된 행사(이를테면 경기 전 예배, 애틀랜타 브레이스 투수 잔 스몰츠 같은 선수의 간증)를 개최해 새로운 스포츠 마케팅(?)의 한 분야를 이룰 정도입니다.

자연히 종교적으로 무장한 선수나 감독들의 성공 사례 또한 부쩍 눈에 띄고 있습니다. 지난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한국 야구를 세계 4강으로 이끈 김인식 감독, PGA에서 아시안 최다승(4승)을 기록 중인 최경주, 얼마 전 흑인 감독으로 사상 첫 수퍼 보울 우승을 차지했던 토니 던지 등 이들의 뒤에는 어김없이 두터운 신심이 하나같이 정신적 배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멘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상대에 대한 비교나 분석의 수단으로써가 아닌, 생활의 원리로써 정신적 가치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습니 다. 관념이 액세서리가 아니라 구체적 삶을 지탱하는 뚝심입니다. 그래서 결과가 나빠도 훌훌 털고 일어납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멘털의 뿌리가 가볍지도 않을뿐더러 땅속 깊이 착근해 있기 때문입니다.

김 감독이 반신불수에 가까운 몸으로, 던지가 장남을 자살로 가슴에 묻고도 승부의 현장에서 거뜬히 버텨 내고, 최경주가 그 숱한 선행을 남몰래 쌓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생활의 원리로써 멘털인 것입니다.

뉴욕 메츠 박찬호가 스프링캠프서 야구에 대한 고민, (자신을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고민을 더욱 공부하기 위해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특유의 화법으로 또다시 어느 고승이 남기고 간 화두를 곁들였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고민의 소실점이 분명 야구이고, 자기 자신이라면 화두는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입니 다. ‘공은 공이요, 방망이는 방망이로다.’ 그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어서 영양가 도 많습니다.

구자겸 USA중앙 스포츠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