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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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단식이 30일로 5일째를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 비리 의혹 관련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다. 崔대표 스스로 "이 나이에 단식농성을 하게 될 줄 몰랐다"고 할 정도로 그의 단식은 의외였다.

崔대표의 단식농성을 놓고 "한나라당이 이제 비로소 야당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지론과 "굳이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대론이 엇갈려 있다. 단식 사흘째인 지난달 28일 그를 만나 단식농성의 이유는 무엇인지, 盧대통령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 물어봤다.

최병렬 대표는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7층 대표실 넓은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바닥에는 스티로폼을 깔고 모포를 덮어놓았으며, 그의 뒤쪽엔 '나라를 구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기력이 다소 떨어진 탓인지 처음에 그의 어조는 나직했다. 바로 옆에 있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비판적 질문이 계속되면서 崔대표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단식은 3, 4일째가 고비라고 하던데, 견딜 만합니까.

"다들 그렇게 얘기합디다. 배는 많이 고프지 않은데 말하는 게 약간 부담이 되네요."

-65세라는 적잖은 나이에 갑자기 단식하게 되면서 건강을 해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디다.

"정치를 하면서, 또 이 나이에 단식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소 내 체력이 괜찮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두렵지는 않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인 1990년 3당합당에 반대해 단식했을 때와 비슷한 연세에 단식농성을 하시는 건데요. 그 때에 비해서는 언론 환경이 별로 야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어서 꼼짝없이 진짜 단식을 하셔야겠네요.

"당연히 단식을 한다면 제대로 해야지요. 뒤로는 음식을 먹으면서 단식농성을 한다고 하면 국민을 속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힘든 싸움을 하시는데 죄송하지만, 공세적 질문을 좀 해야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 비리 특검법을 거부한 뒤 바로 단식에 들어갔는데요. 특검법을 관철하기 위해 국회에서 재의하는 노력을 더 기울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법률적으로 말하자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고 다 해서는 안되지요. 첫째, 대통령은 특검법을 수용하는 게 정치도리에 맞습니다. 盧대통령이 스스로 눈앞이 캄캄해져 국민의 재신임을 묻겠다고 한 바로 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측근 비리에 대해 검찰이 몇달간 수사한 결과가 뭡니까. 최도술은 잡범 수준이란 것 아닙니까. 그러다가 특검 얘기가 나오니까 뒤늦게 수사한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盧대통령도 이것을 재의에 부칠 게 아니라 '특검이 사실대로 밝혀달라'고 하는 게 정치 도의나 양심에 있어 합당합니다. 또 '재의'제도가 만들어진 헌법 취지는 처음에 국회의원 과반수로 겨우 통과됐을 때 국회 의사를 재확인해볼 수 있도록 하자는 거지요. 이번엔 의원의 3분의 2 이상인 절대 다수가 찬성한 것이었습니다. 재의에 부칠 사항이 아니지요."

-그렇더라도 민주당 등과 공조해 재의결을 추진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盧대통령은 아주 영리한 분입니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에서 재의결될 거라고 봤다면 결코 거부하지 않았을 겁니다. 재의결되면 盧대통령에겐 엄청난 정치적 타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대통령과 청와대가 최소한 10여명의 의원들에겐 손을 썼을 거라고 봅니다. 재의를 추진하다 부결되면 측근 비리는 영영 못 밝히는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盧대통령과 이 문제를 놓고 공개토론하자고 했는데 영 대답이 시원치 않네요."

-대통령이 옛날처럼 돈이나 위협으로 야당의원들을 회유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쉽지는 않지만 수단은 몇가지 있다고 봅니다. 여러모로 듣는 얘기는 있지만, 지금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조순형 대표도 특검법 재의결의 의지를 다지고 있고, 4당 대표회담도 제안했는데요.

"대화하자는 취지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盧대통령의 국정운영 잘못이 문제의 발단입니다. 지금 대표회담에 나가는 건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재의결 문제는 좀 두고 봅시다."

-단식은 마지막 수단인데, 특검법 거부가 그 정도로 중대한 사안인가요.

"거부권 행사가 하나의 계기가 된 것뿐이지요. 盧대통령이 이대로 나라를 끌어가면 미래가 없습니다. 투자하는 기업이 있나, 취직이 되나, 장사가 되나. 미국.중국.일본은 다 경제가 다시 일어서고 있는데 우리만 2%대 성장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盧대통령이 국민을 잘 살게 하는 데 노력하지는 않고, 이상하게 '코드'타령만 하다 이렇게 된 겁니다. 안보는 어떻습니까. 촛불시위부터 시작해 한.미 간 문제가 커지더니 드디어 11만평 의견 차이로 미8군 사령부.한미연합사 등이 모두 오산 이남으로 가버리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이 나라에 투자하겠습니까. 또 지금 투자한 걸 유지라도 하려 하겠습니까. 시민들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문제는 도외시하고 자기 비리 밝히자니까 무서워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내 한 몸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본 겁니다."

-崔대표의 단식에 대해 민노당에선 자장면을 배달시킨다고 하고,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야당대표 식사문제 따위엔 관심없다'고 하던데요.

"요즘 정치 현장의 말들이 수준이 무너졌습니다. 盧대통령도 보십시오. 과거 독재정권 때도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 이렇게 막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에도 금도가 있고 수준이 있어야 하는데, 인터넷에 마구잡이로 오르는 수준을 정치가 따라가니 한심하지요."

-단식이 다목적용이란 지적이 있습니다. 대선자금 수사로 한나라당이 궁지에 몰리게 생겼으니까 이 참에 국면을 바꿔보자는 뜻은 없습니까.

"측근비리 특검을 관철한다고 그것이 대검 중수부의 수사에 무슨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대선자금 수사는 중수부에서 하고, 대통령 측근 비리는 특검에서 하자는 것이지요. 대통령은 검찰의 임명권자인데, 그런 검찰이 대통령 주변을 어떻게 제대로 수사하겠습니까. 또 지금 대선 자금 관계로 무슨 결과가 나오든 피해갈 방법이 있나요. 정치개혁 하자는데 누가 대놓고 반론을 펼 수 있습니까. 측근 비리가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우리를 음해하려는 거지요."

-당 내부용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당내 리더십을 강화할 필요를 느낀 건 아닌가요.

"소설입니다. 나는 이 당을 명분을 갖고 끌고 나가지, 개인적 관계로 끌고가지 않습니다. 공천에 관해서도 당선될 사람 위주로 생각하지, 나와의 친소관계는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최소한 지난 16대처럼 과반수에 가까운 수준으로 확고하게 승리하지 못하면 한국에 여러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그걸 못이뤄내면 내가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여러차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단식을 시작하는 것도 힘들지만 푸는 것도 명분이 있어야 할 텐데요. 언제 푸실 겁니까.

"우선 특검이 관철돼야 하고, 특검 내용에 따라 盧대통령이 지금과 다른 국정수행을 할 수 있도록 영향력이 행사돼야 합니다. 그게 안되면 단식을 계속해야겠지요."

-한나라당이 국회 등원을 거부한 데 대해선 비판이 거셉니다.

"엄청난 공격을 받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 당 지지도도 상당히 흔들릴 겁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국회 정상화는 물론 중요하지요. 그렇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 나라 대통령을 바로서게 만드는 겁니다. 예산이나 정치개혁 등은 거의 합의에 도달해 있어 盧대통령이 거부를 철회하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여권에선 한나라당이 여론의 압박을 받아 오래 못 버틸 거라고 합니다만.

"특검이 안되면 정국은 풀리지 않습니다. 특검 못하고 대통령을 지금처럼 그대로 두면 대한민국은 주저앉습니다. 이건 국가의 생존이 달린 문제입니다."

-특검으로 측근 비리가 드러난다고 해서 과연 盧대통령이 경제나 안보 정책 면에서 崔대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겠습니까.

"盧대통령 주변의 문제가 부각되면 그 결과로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이 바뀌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하는 거지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은 盧대통령과 崔대표가 기세 싸움.오기 싸움 하는 것 아니냐는 양비론 입장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대통령과 기세싸움을 해서 이길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호사가들 얘기일 뿐이지요. 나는 대통령에게 불만이 없지 않지만 국민이 뽑았으니까 진퇴에 대해선 얘기한 적 없습니다. 다만 '왜 나라를 바로 이끌지 않느냐'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탈북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국은 군인 유해 하나 찾는 데 수백만달러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호는 못할망정 국가기관이 은폐나 하는 상황 아닙니까.

"그 문제는 국정조사를 해야 할지 심각히 고민해보겠습니다. 어떻게든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비위를 맞추려다 보니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것이지요.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는 국가가 아닙니다."

-대선 자금 공개 안하는 겁니까, 못하는 겁니까.

"솔직히 하고 싶지만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당내 소수의 사람만 진상을 아는데 묵묵부답입니다. 나로서는 가능하면 밝혀 열대 맞을 걸 다섯대 맞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고문을 하겠습니까, 수사를 하겠습니까. 고충이라면 고충이고, 한계라면 한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회창 전 총재와의 관계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것 아닙니까.

"그런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李전총재에게 내 의사를 전달한 바 있고, 그쪽으로부터 '지금으로선 별 얘기할 만한 것이 없다'는 입장을 전해들었습니다. 나도 답답합니다."

정리=강갑생.이가영 기자<kkskk@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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