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공학 전공한 아내 재능 살렸으면…"|첫 한 소 커플…상계동에 신방마련-정병선·에카테리나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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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국인 대학생 정병선씨(27·서울대 노어과3년)와 소련인 대학생 포포나 에카테리나씨 (24·헝가리 부다페스트 공대2년)는 「광복이후 최초의 한 소 커플」이라는 기록을 세운 주인공들로 눈길을 끌고 있다.
한 소가 지난해 9월30일 정식 수교하기 직전인 9월12일 부다페스트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들은 그후 헝가리·소련·한국을 오가며 신방을 차리다 오는8월 서울상계동에 영원한(?) 보금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들의 만남은 러시아어학도인 정씨가 언어 연수차 한국인 대학생 30명과 함께 지난해2월 9개월 코스로 헝가리·소련방문여행을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헝가리 부다페스트공대기숙사에 기거하면서 언어연수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정씨는 같은 기숙사를 사용하는 소련유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친숙해졌다.
이때 변혁의 진통을 겪고 있는 소련의 유학생들은 미 수교국인 한국의 유학생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표시했고 소련여학생들은 한국남학생들을 세계 여성의 날 축제 등에 파트너로 초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헝가리의 여러 지방을 단체로 여행하던 기회에 정씨와 에카테리나씨는 서로 인생에 대한 공감 속에 급속히 뜨거워져 만난지 불과 2개월 만인 9월12일 정씨가 청혼, 부다페스트 내 외무부산하 결혼 신고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모스크바 금속공대를 졸업하고 부다페스트공대에서 로봇공학을 전공중인 에카테리나씨는 1백72㎝의 늘씬한 키와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재원.
모스크바에서 살고있는 그녀의 아버지(51)는 화학자로 연구소에 재직 중이며 어머니(49) 역시 중소 국영기업체 사장으로 소련에서 상류층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
결혼승락을 받기 위해 정씨가 모스크바를 찾아갔을 때 이들 부모는 한국인 사위감에 대해 만족해했으나 다만 『딸이 한국으로 시집가면 자주 볼 수 없지 않느냐』며 잠시 고민하더라는 것.
『오히려 헝가리 주재 한국대사관측이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 조금은 당황하는 모습이었어요. 신중히 고려할 것을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전남 나주출신으로 광주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래성을 생각해 러시아어를 전공하게 된 정씨는 다부진 표정, 단호한 어조의 소유자답게 결혼을 밀고 나갔다는 것.
그들의 결혼식에는 헝가리 결혼신고소에서 신부의 부모도 참석, 금반지를 교환하는 백년해로의 예식을 지켜보았다.
세인의 관심을 의식한 듯 정씨는 『사랑과 결혼에는 인종이 문제되지 않고 얼마만큼 서로 의지하며 살수 있는가가 절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들이 함께 거주한 기간은 1주일정도. 결혼한 후 서로의 공부 때문에 쭉 헤어져야 했다.
에카데리나씨는 지난해12월 잠시 시댁의 나라 한국을 다녀갔고 졸업하는 오는 8월 이후 한국국적을 취득, 서울 상계동 시댁에서 산림을 시작하게 된다.
졸업하기까지 기업체들을 위한 통역으로 생활비를 마련할 것이라는 정씨는 기업인으로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고 아내의 재능이 한국에서 발휘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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